정동진 시간 박물관

사는이야기/여행음식 2017. 1. 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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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말로 시간은 크로노스(Χρόνος)다. 아비인 우라노스를 거세해 버린 티탄신 크로노스(Κρόνος)는 첫 글자만 다르고 소리는 같다. 자식이 자신과 같은 일을 벌일까 두려웠던 크로노스는 자식을 모두 삼켜 버렸다. 크로노스도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들인 제우스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시간은 여전히 우리들 사람에게 무자비하다. 크로노스는 눈 부신 젊음도 불타는 사랑도 집어 삼킨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지만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진리는 영원하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이 많다. 날마다 해는 뜨지만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달력을 만들고 시계를 만들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장에 시계를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간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시간의 문화사'를 읽어 보시라. 사람이 많이 몰리는 1일을 피해 주문진 등대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구름이 있긴 했지만 다행스럽게 날은 좋았다. 요즘 드라마 주인공인 인어공주가 해를 들고 있다. 내일이면 어느새 세월호 참사 1000일이다. 내일도 여전히 새로운 해가 떠오르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새삼스럽게 시간을 들먹이는 까닭은 해돋이를 보고 들렀던 정동진에서 시간 박물관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동진은 해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맘에 들지 않아 한동안 찾지 않았던 곳이다. 기차로 만들어진 박물관은 기대보다 좋았다. 새로 시작하는 때라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어 좋았고 사진도 맘대로 찍을 수 있어 좋았다. 귀한 시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입장료는 아깝지 않다.

시간에 묶여 사는 인간을 그린 시계가 인상적이다. 아주 옛날 시계는 초침이 없다. 심지어 분침도 없는 시계도 있다. 요즘 우리는 어떤 시계를 보고 있는가? 다른 이의 시간을 빼앗기 위해 쓰이는 시계가 있다. 분초를 재면서 통제하는 것이 일상이 된 요즘 시침만 있는 시계는 여간 답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시계를 내려 놓고 하늘에 해와 달로 시간을 가늠하며 살아 보면 좋겠다. 해가 뜨면 슬슬 일어나 산보를 하고 해가 머리 위로 오면 간단하게 점심을 하고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벗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자. 시라도 한 수 읊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기념품은 비싸게 여겨졌지만 아이를 위해 회중시계를 샀다. 우리 아이들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도 않고 또 시간에 얽매인 노예가 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박물관에서 미션을 수행하면 엽서를 한장 주는데 느린 우체통에 부칠 수 있다. 아빠가 회중시계를 사주었음을 분명하게 적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1년 있다가 출발하는 우체통에 넣었다. 내년 이맘 때 아이들은 아빠가 사준 기념품을 다시 챙겨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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