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원은 둘레의 길이가 같다?

수학이야기/미적분 2023. 6. 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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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고대 그리스 시절 수학자들을 괴롭힌 여러 가지 역설이 있다. 그 가운데 무한과 관련된 몇 가지 역설은 요즘 사람도 깨기가 쉽지 않다. 미적분도 배우고 집합론도 배워야 겨우 모순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역설을 연구하면 수학 문제 해결에 직관은 굉장히 좋은 도구이지만 한계도 분명함을 깨닫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 역설

아래 영상과 같이 반지름의 길이가 다른 동심원이 함께 구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큰 원은 빨간 선분 위를 구르고 작은 원은 파란 선분 위를 따라 한 바퀴 회전한다. 두 선분은 길이가 같다. 따라서 두 원은 둘레의 길이가 같다?

뭐야 이건! 이게 맞다면 모든 원은 둘레의 길이가 같다.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막상 모순을 명확하게 찾아 역설을 깨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엄밀하게 증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두 원 위에 있는 점이 움직이는 자취를 생각해 보자. 자취 1은 아주 유명한 곡선인 사이클로이가 된다. 직관적으로 자취 2는 당연히 자취 1보다 짧다고 느낄 것이다. 자취 1과 자취 2에 있는 점은 일대일 대응하므로 개수?가 같다. 자취인 두 곡선은 물론 두 선분 위에 있는 점은 중심을 지나는 점선과 만나는 점을 생각하면 일대일 대응한다. 이제 역설이 발생하는 까닭을 알았다. 두 곡선 위에 있는 점이 일대일로 대응한다고 두 곡선의 길이가 같다고 말하면 안 된다.

자취 2와 같이 원의 내부나 외부에 있는 점이 원이 구를 때 그리는 곡선은 트로코이드라고 부른다.

더보기

잠깐 트로코이드 곡선의 방정식을 구해보자.

두 원의 반지름을 각각 $a,b$라고 하자. 바퀴라고 생각하면 두 원이 회전하는 속도는 같다. 

$\theta$초 후 원의 중심은 $O(a\theta,a)$라고 하자.

$$Q(a\theta -b\sin \theta,a-b\cos\theta)$$

갈릴레오의 반격

그렇다면 두 원이 구르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이 역설의 허점을 짚어낸 사람은 갈릴레오다. 그는 원이 아닌 다각형을 굴려서 바깥의 도형과 안쪽에 있는 도형이 움직이는 차이를 설명했다.

바깥에 있는 도형의 변은 빈틈없이 이어지지만 안에 있는 도형은 끊어지는 구간이 생기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이것을 일반화해 보자.

미적분의 마무리

$\overline{OA}=a,\;\;\overline{OC}=b$인 정$n$각형을 굴린다고 가정하자. 

이 다각형의 변 위에 페인트를 칠하고 굴렸다고 생각하면 바깥의 변은 바로 이어지지만 안쪽은 점 $C$가 $C^{\prime}$로 옮겨지는 만큼 비는 곳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비는 구간의 길이를 계산해 보자.

한 외각의 크기인 $\theta$만큼 회전했을 때를 계산하자.

$\theta= 2\pi/n$이므로 $$\overline{CC^{\prime}}=2(a-b)\sin \frac{\theta}{2}=2(a-b)\sin \frac{\pi}{n}$$

따라서 $n$번 구를 때 비는 구간의 길이를 모두 더한 값 $L_n$은 아래와 같다.

$$L_n=2n(a-b)\sin \frac{\pi}{n}=2\pi\times \frac{n}{\pi}(a-b)\sin \frac{\pi}{n}$$

$n$ 한없이 커지면 점점 원에 가까워진다.

극한값을 구하여 원이 구르는 때를 생각하자. 

$$\begin{split}\lim_{n\rightarrow \infty}L_n&=\lim_{n\rightarrow \infty}2\pi(a-b)\cfrac{\sin \cfrac{\pi}{n}}{\cfrac{\pi}{n}}\\&=2\pi(a-b)\end{split}$$

이제 모순을 제거하였다.

감상

무한을 직관으로 이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수학이 필요한 것이다. 영상을 보면 직관적으로 두 원의 둘레가 모두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반지름이 $a,\;b$( $a>b>0$)인 동심원이라고 생각했을 때 큰 원은 둘레가 그대로 직선이 되지만 작은 원은 둘레가 펼쳐지면서 무한한 빈 곳이 생긴다. 이 빈 구간의 길이는 0에 무한하게 가깝지만 모두 더한 값은 $2\pi(a-b)$가 된다. 원의 중심은 무한한 점을 거쳐가지만 빈 구간의 길이가 $2\pi a$이므로 거쳐간 구간의 길이는 0이다.

무한급수를 무한 번 더한다와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무한소나 무한대를 수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극한을 엄밀하게 다루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무한의 본질을 꿰뚫어 본 칸토어가 남긴 말을 음미해 보자. 우리는 오늘날 무한의 세계를 거닐 자유를 만들어 준 수학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로움에 있다.
The essence of Mathematics is freedom.
Das Wesen der Mathematik liegt in ihrer Freiheit.
- 게오르크 페르디난트 루트비히 필리프 칸토어
(Georg Ferdinand Ludwig Philipp Cantor, 1845~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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