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거침에 대하여

사는이야기 2020. 4. 2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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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데카르트를 좋아한다. 그가 사랑한 명제 "Cogito, ergo sum"을 아이패드 뒷면에 새겨 넣었다. 나름대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산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홍세화 선생이 쓴 "결: 거침에 대하여"를 읽으며 반성했다. 다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은 오랜만이다.

지난해까지 아주 가깝게 지내던 선생님이 있다. 가끔씩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철학, 정치, 사회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언제이던가 한참을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내게 사회주의자냐고 물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자생적 사회주의자'라고 답했다. 80년대 뉴스에 자주 나오던 말이다. 공안검사들이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그냥 사회주의자면 사회주의자인 것이지 자생적은 또 뭔가? 자생적이 아니라면 누군가 주입해서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말일까? 남이 심어준 생각만으로 무슨 무슨 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아무튼 그 시절보다 엄청나게 자유로운 나라가 된 것 같지만 아직도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밝히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아직도 종로 한복판에서 '김정은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북에서 넘어온 사람이 강남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세상이지만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철저한 사회주의자는 되지 못했다. 다만 약육강식을 부르짖는 천민자본주의를 혐오한다.

간디는 거의 한 세기 전에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회악으로 일곱 가지를 꼽았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신앙'이 그것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그가 꼽은 일곱 가지 사회악은 이 땅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서문에서

젊었을 때 나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그래 봐야, 너만 손해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겠어'라는 말을 제법 들었다. 늘어난 뱃살과 함께 사회를 향한 비판의 날도 무디어졌다. 뱃살은 빼고 날은 다시 벼려야겠다. 홍세화 선생 말처럼 '조금 더 낫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되어야겠다.

나이 팔십이 넘어서도 지난날을 반성하지 않는 전두환 같은 작자를 감싸고도는 세력이 있다.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를 일삼으며 기득권 지키기에 눈이 벌건 자들에게 표를 던지는 노동자가 많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어서 남이 심어준 생각만 가득 차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서문에 나오는 김학철 선생이 남기신 "편하게 살려거든 불의를 외면하라! 인간답게 살려거든 그에 맞서라"라는 유언을 다시 새겨본다. 이제 나는 삐딱하게 세상을 살 거다. 전두환이 죽는 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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