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글 하나

사는이야기 2020. 11. 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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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블로거를 위한 도움말'을 적다가 생각나서 지금은 없는 옛 블로그에 있는 글을 하나 옮겨 놓는다.


집안에 텐트 치다

2009년 7월 26일에 쓴 글

올여름엔 야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늘 성수기가 되면 방 구하기도 어렵고 구한 방도 비싸기 일쑤라 텐트를 가져가 야영을 하는 것이 나을 듯해서다. 목요일 산 텐트가 오늘 집에 도착했다. 비가 내려 바로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집안에서 달랬다.

요즘은 우산처럼 펴기만 하면 되는 텐트를 많이들 사는가 보다. 값은 십만 원 가까이 더 비싼데도 말이다. 나란히 놓고 보면 비싼 것이 한결 나아 보인다. 여섯 살 난 아들에게 골라보라고 하니 바로 비싼 것을 고른다. 값을 보니 무려 이십칠 만원이다. 꼭 사기로 맘을 먹고 온 터라(이마트 오기 싫어서 여기저기 다 돌아보았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음) 그냥 아들 뜻대로 사기로 했다.

사은품으로 깔판과 랜턴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말에 아내가 말했다.
"이렇게 비싼 거 사는데 사은품을 하나 더 주세요."
"뭘 모르시나 본데. 이게 사십만 원에 팔 던 거랍니다."
"...... 그래요. 자기야 우리 그냥 가자."

여자들끼리는 주고받는 말 말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의사소통을 한다. 난 창고에서 물건까지 꺼내 오게 해 놓고 그냥 오지 못하는 성격이라 아내가 그냥 가자는 말에 잠깐 망설였다. 한쪽에 가서 이야길 들어보니 우리를 뭘 모르는 사람이라 무시하는 투로 들렸단다. 그 아주머니 말투가 원래 그러려니 했는데 아내는 아닌가 보다. 열심히 설명해주던 아르바이트 학생에겐 미안했지만 아무튼 아내 기분이 내겐 더 중요하니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훨씬 싸고 좋아 보이는 텐트에 사은품도 몇 가지를 끼워주는 것이 많다. 그 가운데 십삼만 원쯤 하는 걸로 샀다. 사은품은 숯불구이를 할 수 있는 것과 버너를 주었다. 눈으로 보고 사지 않아서 조금 걱정했는데 값도 싸고 물건도 좋아 보인다. 6인용이라 그런지 아주 넓어 우리 가족 넷이 모두 들어가 누워도 좁지 않다. 잘 모르면 비싼 것을 사자는 맘을 가지고 산다. 비싼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건을 기분으로 사는 일이 더 많아 보인다. 야삽과 얼음상자, 깔판에 랜턴까지 샀는데도 더 싸다.

다음 주말이 지나면 진짜 멋진 곳에서 야영하는 사진을 올리겠다.


이 글을 쓴 날 블로그가 폭발했다. 17만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네이버 대문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날은 그날 이후로 없었다. 지금 봐도 추억이 새롭다. 아무튼 약속대로 바로 다음 주에 첫 야영을 나갔다. 설악동에서 1박, 백담사에서 1박을 했다. 생각한 대로 텐트 안에서 보내는 밤, 그리고 야생에서 먹는 밥, 모든 것이 좋았다.

이 텐트로 참 많은 곳을 다녔다. 망상에서 세찬 바람에 플라이가 찢어지는 바람에 다른 텐트를 살 때까지 4년쯤 썼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참 고전적인 녀석이다.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이 싫어해서 야영을 가지 못한다. 중학생이면 데리고 다니기 어려우니 야영을 하고 싶은 분들은 서두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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