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터법이 수학이다
수학이야기 2023. 5. 6. 16:53기원전 221년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도량형 제도를 만들어 공표하고 표준이 되는 자, 저울, 되를 대량으로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도량형(度量衡)은 길이, 넓이, 부피, 무게를 재는 단위법과 재는 기구를 이르는 말이다. 아주 먼 옛날에도 사람들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으로 시간을 쟀다. 시간은 재는 기준이 같아서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통일하기가 아주 쉽다. 그러나 길이, 넓이, 부피, 무게를 재는 기준이 제각각이라 통일하기가 쉽지 않다.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중국이 없었을 수도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는 모두 같은 도량형을 쓰고 있다. 미터법이 바로 그것이다. 공식적으로 미터법을 쓰지 않는 나라는 미국, 라이베리아, 미얀마 단 세 나라이다.
1999년 9월, 화성 궤도에 진입하던 미국의 ‘화성 기후 궤도선(Mars Climate Orbiter)’이 대기와 마찰을 일으켜 파괴됐다. 탐사선을 제작했던 록히드 마틴은 야드파운드법을 기준으로 제작했는데, 탐사선을 실제로 운용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계기에 표시된 숫자들을 미터법 단위로 이해해 조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진력 수치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탐사선은 화성에서 예정보다 100km 아래인 60km 지점의 낮은 궤도에 진입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미터법을 쓰기 시작했을까? 찾아보니 1964년 1월 1일부터 미터법을 전면 실시했다.
https://theme.archives.go.kr//next/pages/new_newsletter/2016/01/sub01.html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 이제 미터법이 거의 모든 부분에 잘 정착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파트 넓이를 평으로 재거나 금반지를 돈으로 재는 일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재는 것도 아니다. 평이나 돈을 재는 자나 저울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재는 일이 불가능하다. 미터법으로 잰 것을 억지로 환산해서 부르는 것에 불과하다. 정확하게 잴 수 없으니 자칫하면 사고팔 때 속기 쉽다.
1평은 한 변의 길이가 6자인 정사각형의 넓이다. 자는 척으로 부르는데 오늘날 비공식으로 쓰는 척은 약 30.303cm이다. 이것은 일본이 쓰던 단위다. 대한제국은 미터법을 쓰려고 했는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면서 우리도 쓰게 된 단위일 뿐이다. 따라서 얼른 버려야 하는 단위인데 건설업 쪽은 아직도 일제 잔재가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평을 계산해 보자.
$$(6\times 30.303)^2=33057.785124cm^2=3.3057785124m^2$$
이 아파트는 평당 1000만 원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등기에는 제곱미터로 쓰여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파트 넓이가 $66m^2$라면 좋겠지만 $100m^2$와 같다면 그냥 파는 사람이 내라는 대로 값을 치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계산이 약한 사람을 속이기는 참 쉬운 일이다. 금을 사고팔 때도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돈을 잴 수 있는 저울이 없으니 계산이 약한 사람은 속아도 속은 줄을 모른다. 여행 가서 환전할 때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뭔가 계산하고 싶어도 정확한 기준이 없으니 그냥 바꿔주는 사람이 매기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10진법을 쓰고 있다. 따라서 도량형도 당연히 10진법에 맞게 발명한 미터법을 써야 한다. 1피트는 12인치이라 12진법인가 싶은데 1야드는 3피트란다. 이런 단위계를 쓰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지구 자오선의 길이는 얼마일까? 40000km이다. 이렇게 딱 떨어지는 까닭은 미터를 정할 때 지구 자오선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미터법의 역사를 정리해 둔다.
미터법은 1799년 12월 10일, 프랑스에서 도입됐다. ‘미터’라는 용어의 어원은 ‘잰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메트론(metron) 혹은 라틴어 메트룸(metrum)에서 유래됐다. 18세기 말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시민 혁명이 한창이었다. 혁명을 이끌어낸 계몽사상가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척도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실제로 그 당시 프랑스에는 약 800개의 이름으로 25만개나 되는 도량단위가 쓰이고 있었다.
과학아카데미의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했던 새로운 도량형 체계는 임의적이지 않고 표준 원기(原器)를 잃어버리더라도 쉽게 재생이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단순해서 사용하기 편리하며 합리성, 보편성을 갖춰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10진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최종적으로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子午線) 길이(90도)의 1,000만분의 1을 새로운 단위 미터로 한다’고 공표했다.
프랑스는 1799년 6월 미터법을 국가 표준으로 할 것을 법령으로 공포했다. 하지만 미터법은 보급되기까지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프랑스에서는 1840년 강제로 법령을 집행하기에 이른다. 이후 1870년 8월에는 파리에서 국제 미터법 위원회가 발족됐고 1875년 5월 20개국 참가국 중 17개국이 미터 협약에 서명했다.
미터의 기준이 되는 원기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온도에 따라 미세한 변화가 생긴다. 적도와 북극에 가까운 나라가 똑같은 미터를 쓰기 위해서 정의를 다듬어야 한다. 이제 미터는 빛이 이동하는 거리로 정의한다.
http://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4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