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가'가 아니라 '사람이'일까?
사는이야기 2015. 6. 16. 22:31우리말 공부에 도움이 되는 기사가 있어 옮겨둔다.
왜 '사람'은 '사람이 있다'이고 '사자'는 '사자가 있다'일까? 단순히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국어 조사는 앞에 오는 체언에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주격조사 '이/가', 목적격조사 '을/를', 대조(또는 화제)의 보조사 '은/는', 방향을 나타내는 격조사 '으로/로', 비교의 격조사 '와/과', 선택의 보조사, '이나/나' 등은 받침 있는 체언 뒤에서는 전자, 받침 없는 체언 뒤에서는 후자의 형태를 취한다(그런가 하면 '이다', '에서', '에게' 처럼 앞에 오는 체언과 상관없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도 있다).
왜 선행 체언에 받침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조사의 형태가 달라지는 걸까?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우선 한국어의 받침에 대해 알아보자.
<훈민정음>에서는 "終聲은 復用初聲하니라", 즉 "종성은 초성을 다시 사용한다"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받침에서 실제로 발음되는 소리(음운)는 [p], [t], [k], [m], [n], [ŋ], [l] 일곱 개뿐이다. 실제로 <훈민정음>에서는 'ㄱ', 'ㅇ', 'ㄷ', 'ㄴ', 'ㅂ', 'ㅁ', 'ㅅ', 'ㄹ' 여덟 자를 쓰도록 규정했다. 그리고 소리 나는 대로 표기했다. 이를테면 '사람은'이 아니라 '사라믄'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받침은 여덟 자만으로 충분하다(현대어에서는 받침에 [s]를 쓰지 않으므로 일곱 자만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받침에 쓰이는 자음은 'ㅂ', 'ㅍ', 'ㅁ', 'ㄷ', 'ㅌ', 'ㅅ', 'ㅆ', 'ㅈ', 'ㅊ', 'ㅎ', 'ㄴ', 'ㄹ', 'ㄱ', 'ㅋ', 'ㄲ', 'ㅇ'의 16개다(일단 자음군은 논외로 한다). 이 많은 자음은 다 어디에 쓰는 걸까?
지난 칼럼 <'이싀암강' 뒤집으면, '악마의 시'가 된다고?>에서 설명했듯, 받침은 우리가 의도한 대로 소리 나지 않는다. '밖'이라고 발음해도 실제 소리는 [박]으로 난다. 그렇다면 [박]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것이 '밖'인지 '박'인지 알 도리가 없다. [박]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뒤에 올 때뿐이다. '밖을 좀 봐'는 [바끌 좀 봐]로, '박을 좀 봐'는 [바글 좀 봐]로 소리 나며 이때 비로소 [박]에 숨어 있던 받침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한국어의 조사 중에서 자주 쓰이는 것들은 (선행 체언에 받침이 있을 경우) 모음으로 시작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출간한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 한국어 학습용 어휘 선정을 위한 기초 조사 2>에 따르면 한국어에서 가장 많이 쓰는 조사 1위부터 15위까지는 '의', '을', '에', '이' '는', '를', '은', '가', '도', '으로', '에서', '로', '과', '고', '와'다. 같은 조사의 이형태(異形態)를 묶으면 '을/를', '이/가', '은/는', '의', '에', '으로/로', '도', '에서', '와/과', '고'의 순으로 10개가 되는데 7위, 8위, 10위를 제외하면 모든 조사가 무조건 모음으로 시작하거나 선행 체언에 받침이 있을 때 모음으로 시작한다.
체언 뒤에는 조사가 붙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대부분의 경우에 받침의 원래 형태가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앞 음절의 마지막 자음인 받침이 다음 음절의 초성으로 변하는 이 현상을 일컬어 '종성의 초성화'라 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비교하면 한국어의 받침이 일곱 가지인데 반해 일본어는 'っ'과 'ん'의 두 가지뿐이다. 모음(단모음)도 한국어가 일곱 가지인데 반해(ㅏ, ㅔ/ㅐ, ㅣ, ㅡ, ㅜ, ㅗ, ㅓ) 일본어는 다섯 가지뿐(/a/, /e/, /i/, /o/, /u/)이다. 따라서 한 음절을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한국어가 일본어보다 훨씬 많다. 그러니 일본어의 동음이의어가 한국어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어는 한글 전용이 가능한데 일본어는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어는 일본어에 비해 동음이의어가 훨씬 적으며, 그나마 있는 것들도 대부분 문맥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문맥으로도 파악되지 않는 극소수의 동음이의어를 구분하기 위해 한자 병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겠다면, 한자 병기와 교육의 사회적 비용보다 이로 인한 편익이 크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받침을 동원하여 동음이의어를 방지하고 조사를 붙여 받침의 원래 발음을 복원하는 이 기발한 방법은 한국어가 교착어(실질적의 의미를 가진 단어 또는 어간에 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결합하여 문법적인 역할이나 관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언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거기에 한국어의 음소와 형태까지 반영한 과학적 문자인 한글까지! 이렇게 행복한 언어가 또 있을까?
[참고]
<훈민정음 해례본>
노마 히데키 <한글의 탄생>(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