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고향을 기록하다
사는이야기 2020. 8. 17. 20:24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530번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초중고 시절을 보낸 곳이라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동네다. 대부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딱히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곳은 없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개발을 빗겨 나 있어 쉰 살이 넘은 아직까지 동네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동네도 재개발이 결정되어 조만간 아파트를 짓기 위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셋방 살이로 이 집 저 집 대충 다섯 번 이사를 했던 동네라 그다지 아쉬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사라진다고 하니 사진은 몇 장 남겨두고 싶다. 친구들과 놀던 시절엔 숨차게 뛰던 골목이 이제 와 보니 무척이나 좁다. 다락방이 있는 집 문간방에 살았었다. 마당이 제법 넓다고 느꼈었는데 이제와 보니 마당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좁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원주민은 별로 남지 않았다. 아직도 이 동네에 사는 친구는 하나뿐인데 그 친구도 동네에 남지 못하고 조만간 떠나게 된다. 소문에 따르면 무너진 빈집 가운데 서울 사는 사람이 사 둔 집도 제법 많다고 한다.
이제 꽃 피는 산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도 사라지고 고향을 그리는 시도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살던 아파트가 재개발되어 쫓겨났다는 시만 남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