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이겼다
사는이야기 2020. 9. 2. 10:31민주당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일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의사가 이겼다. 이 글은 의사 파업에 대한 찬반을 밝히는 글이 아니다. 여당이나 의사 단체나 둘 다 잘못이 있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앞으로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말하고 싶다.
제자 가운데 의대를 가려고 하는 학생에게 묻는 질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고 답하는 학생은 없었다. 자기소개서를 보면 불치병이나 난치병을 고치는 일을 꿈꾸고 있다. '국경 없는 의사회'에 있는 의사나 '울지 마 톤즈'에 나온 이태석 신부와 같은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이국종 교수도 자주 등장한다.
의사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파업을 벌이는 까닭은 오로지 '돈'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에서 어떤 단체이든 이익을 위해 다투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전국 94개 수련 병원에 있는 전공의가 받는 평균 월급은 370.9만 원이다. 기사와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는 전공의들 노동 조건을 생각하면 많지 않다. 일부 대형 병원이 거두는 엄청난 수익까지 생각하면 왜 전공의들은 노조를 만들어 대항하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심하기도 하다.
사명감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고시나 공사에 합격하는 일보다 의사 되는 일이 쉽다고 할 수 없다. 당연히 의사에게 합당한 수준의 높은? 수익은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판사나 검사가 박봉에 시달리면 유혹에 빠지기 쉽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사명감은 없고 돈만 좇는 의사는 쓸모없다. 흔히 돈만 좇는다고 취급받는 장사꾼도 작은 사명감을 가지고 산다. 하물며 존경을 받는 일을 하는 의사, 판사, 검사들이 사명감이 없다면 큰일이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사회에 쓸모없음을 넘어 해를 끼친다. 교사도 목사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돈과 쫓는 전광훈이 떠오른다.
의대 6년을 마치고 국가고시를 통과하면 의사 면허를 얻게 된다. 이들은 '일반의'로 부른다. 다시 수련 병원에서 '수련의'로 2년을 일하고 전공할 과을 정해 '전공의'로 4년을 하고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전문의'가 된다. 보통 수련의는 인턴으로 전공의는 레지던트로 부른다. 쉽게 말하면 의대는 '학사', 수련의는 '석사', 전공의는 '박사' 과정이다.
의대를 마치고 전문의가 되는 비율은 약 80%이다. 지방에 남으려는 의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전문의가 되기까지 과정은 그들이 의대 입학을 꿈꾸며 가졌던 사명감을 없애기에 충분할 정도로 힘들다. 어쩌면 당연히 능력이 된다면 이른바 장사가 잘 된다는 성형외과를 전공하고 지방보다는 서울 그것도 강남에 자리를 잡고 싶을 것이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 제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아직도 꿈을 잃지 않고 사명감으로 사는 의사가 많다. 그들을 위해 돈벌이 수단이 되어 버린 병원을 바꿔야 한다. 먼저 공공 병원을 크게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여당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지금 있는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역 의사로 뽑아서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일하게 만든다는데 위에 적혀 있듯이 수련의와 전공의 기간만 6년이다. 전문의가 된 다음 4년 지방에 있던 의사들은 당연히 서울로 몰려갈 것이다. 지금 의사들이 목숨 걸고 반대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에 '전문의'만 필요하지 않다. 시골엔 자격을 갖춘 사명감을 지닌 '일반의'가 더 필요하다. 시골에 사는 노인들 대부분은 당뇨나 고혈압 약을 처방받으러 병원에 간다. 큰 수술이 필요하면 지방이 아니라 모두 서울로 간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는 지방 중소도시가 늘고 있다. 건강한 산모는 산파만 있어도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지방의료원을 세우고 전문의 지도 아래 일반의가 여럿이 산부인과를 운영하면 된다. 당연히 보험수가가 아닌 국가 예산으로 운영해야 한다. 당연히 의료진의 능력밖에 있는 환자를 빠르게 대도시 대형병원으로 옮기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마오쩌둥이 이끈 사회주의 중국에서 이른바 '하방'으로 시골 동네마다 의학 지식을 가진 이가 내려가 위생과 보건을 돌보니까 평균 수명이 빠르게 늘어났다고 전해진다. 여러 부분을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지역을 맡아 주치의로 일하게 하기 위해 '가정의학과'를 만들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원격의료'를 개혁으로 믿는 이들에게서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자로 몰리면 살기 힘들다. 하지만 꿈을 품고 정치를 하는 이들은 이제 사회주의자로 몰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정권을 잡은 다음엔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한 일을 밀고 나가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정권 재창출을 들먹이며 '어정쩡하게 똥 누는 폼으로 앉아서'으로 눈치 살피지 말자.
모든 국민에게 의료보험을 보장하기 시작한 때는 1977년으로 박정희 정권 때이다. 직장이 없는 이들도 건강보험 가입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두환 정권 때이다. 이 때도 의사들은 분명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이겼다.
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960308.html?_fr=mt3
파업을 찬성하는 단체에서 올린 그림인데 자꾸 2번에 눈길이 간다. 매년 전교 1등을 놓지지 않으려고 공부하는 일과 좋은 의사가 되는 일과의 상관 관계는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