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지 않는 나라
사는이야기 2020. 10. 20. 10:59전교조 조합원인 나는 '노동자'란 이름이 익숙하다. 그런데 여전히 '노동자'란 이름을 딱지를 붙이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바쁘다는 핑계로 세상에 너무 관심을 덜 두고 살고 있다. 미처 모르는 사이에 택배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다.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 읽는다. 노동자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찾아보자. 우리나라는 노동법이 없다. 노동법으로 검색하면 근로기준법이 나온다. 그렇다. 몸에 불을 당긴 전태일 열사는 노동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근로기준법'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제1조(목적) 이 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2. "사용자"란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3.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
4.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한다.
5.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
법전은 수학책을 닮았다. 유클리드가 '원론'을 쓴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수학 선생인 내게 그 형식은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익숙하다. 하지만 용어 정의부터 눈에 거슬린다. 노동조합법에는 당연히 '노동자'란 이름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노동조합인데 구성원은 근로자이다. 뭔가 이상하다. 수학 책엔 이런 일이 없다. 실수 집합의 원소는 '실수'로 부르고 유리수 집합의 원소는 '유리수'로 부른다. 노동조합의 구성원은 당연히 노동자로 불러야 마땅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제1조(목적) 이 법은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여 노동쟁의를 예방ㆍ해결함으로써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ㆍ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2.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3. "사용자단체"라 함은 노동관계에 관하여 그 구성원인 사용자에 대하여 조정 또는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용자의 단체를 말한다.
4.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
가.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나.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
다. 공제ㆍ수양 기타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라.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
마.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5.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이하 "勞動關係 當事者"라 한다)간에 임금ㆍ근로시간ㆍ복지ㆍ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주장의 불일치라 함은 당사자간에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6. "쟁의행위"라 함은 파업ㆍ태업ㆍ직장폐쇄 기타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노동자'란 이름을 법조문에 넣지 못하고 있으니 70, 80년대와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하기 부끄럽다. 의사들이 파업을 했다. 법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노동조합이 아니므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법에 따라 파업을 하면 빨갱이 운운하던 자들은 불법 파업을 벌인 의사들에겐 관대하다. 나는 의사도 노동자로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전공의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쟁의를 벌일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교조가 출범할 때 '교사는 성직이다.'는 헛소리가 난무했다. 백 보를 양보해서 신성한? 일을 하는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택배 기사는 노동자가 분명하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허술하고 엉성하게 정의한 근로기준법에 따르더라도 근로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우리 법은 그들을 특수 고용직으로 부르며 노동자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공자가 물었다.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않다면 그것은 모난 술잔인가?'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지 않으면서 노동자를 어찌 보호한단 말인가? 보호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인권을 보장받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은 일주일에 이틀이 어렵다면 하루라도 쉬어야 한다. 하루에 8시간 노동하면 배고프지 않게 가끔은 비싸고 맛있은 식사도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피, 땀, 눈물로 먹고 사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목사도 의사도 교사도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다 똥이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
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이에게 호감을 산다 그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지 않고 얼굴은 깨끗하다
정원의 휘어진 나무는
땅이 나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무가 휘었다고 욕한다
나는 보지 않는다 푸른 조각배나 한가로운 돛단배를
어부들의 닳아질 대로 닳아진 어망만을
바라볼 뿐이다
왜 나는 사십대에 허리가 구부러진
토지 없는 농부에 대해서만 노래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옛날처럼 따뜻한데
내 시에 운율을 맞추는 일이
겉멋을 부리는 일처럼 생각되기까지 한다
내 안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꽃으로 만발한 사과나무에 대한 도취와
저 칠쟁이의 연설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나 분노가 나로 하여금
당장에 펜을 잡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