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

사는이야기/여행음식 2020. 11. 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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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다 보면 절기가 바뀌는 걸 사진으로 느낀다. 아파트 놀이터에 선 나무에 단풍이 이쯤 붉었으니 반계리 은행나무도 절정일 것으로 생각했다. 한 주 더 지나면 제대로 된 사진을 담지 못할까 봐 추적추적 비가 내려도 길을 나섰다.

삼각대까지 챙기고 풍경을 아주 넓게 담을 수 있는 14mm 단렌즈를 달았다. 그러나 날씨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잔뜩 흐린 하늘과 렌즈에 맺힌 물방울이 너무 아쉽다. 하지만 오늘도 나무는 꼬집어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울림을 전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맞이하고 떠나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 갑자기 '묵묵하다'는 '나무처럼'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늘 와서 보니 은행나무가 물드는 일은 머리숱이 희끗해지는 일과 비슷하다. 겉에는 샛노랑인데 안쪽은 아직 푸른 잎이 많이 남았다. 절정에 이르면 바닥은 노란 은행잎이 빈틈없이 두툼하게 덮이는데 아직은 흙이 더 많으니 절정까지는 아지 좀 남았다. 이 나무가 한꺼번에 물이 들면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올해는 풍년은 아닐 듯하다.

이 나무 때문에 원주시를 대표하는 나무로 '은행나무'로 정했을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은행나무가 좋은 또 다른 명소 연세대 미래 캠퍼스를 잠깐 들렀다. 나무들이 휑하다. 역시 뿌리 깊은 나무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그 나무가 은행나무라면 더욱 그렇다. 은행나무는 3억 5000만 년 전에 지구에 나타나 공룡과 함께 살았던 나무이니까 유전자에 참을 인자가 셀 수 없이 새겨져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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