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며 가르친다
사는이야기 2020. 12. 3. 15:46오늘 실로 오랜만에 방명록에 글이 올랐다. 주로 수학 이야기를 적는 블로그라 댓글도 뜸하지만 방명록을 쓰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반가운 마음에 답글을 달다가 조금 당황했다. 초등생 아이가 물어본 질문인데 24년이나 수학을 가르치면 살았는데 단박에 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키백과를 뒤져서 답을 하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있다. 배우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 따로가 아니다. 배우며 가르치고 가르치며 배운다. 오늘 작지만 한 가지 배웠다. 들꽃을 좋아하는데 이름을 모르는 것은 있어도 이름이 없는 것은 없다. 기호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인터넷의 고마움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답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 유행으로 갑자기 재택근무를 하게 된 아내가 원격 업무 시스템 접속이 안 된다며 컴퓨터를 손 봐 달라고 말했다. 처음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문제 해결이 쉽지는 않았다. 과정은 어제 쓴 글에 적었다. 이글에선 이제까지 뜻도 모르고 쓰던 용어를 정리해 두려고 한다. 정리할 용어는 브이피엔과 이브이피엔이다. 컴퓨터 관련 용어는 영어가 대부분인 데다가 머릿글자만 떼어내 부르는 까닭에 그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쓰는 말이 아주 많다. 세종대왕이 걱정하던 '어린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쉽게 펼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브이피엔은 Virtual Private network의 머릿글자를 떼어내서 만든 말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가상 사설 망'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공용 망'은 물리적인 채널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보안을 위해 가상으로 연결한 붉은 선이 바로 브이피엔이다. 학교 업무 시스템에 있는 나이스는 민감한 자료가 너무 많아서 따로 망을 만들고 여기에 물리적으로 연결된 컴퓨터로만 접속할 수 있도록 했지만 재택근무와 같은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공용 망을 통해 원격 접속을 허용해야 한다. 당연히 보안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다.
광고를 보니 스누핑, 간섭, 검열로부터 보호한다고 한다. 보안 브이피엔 서버에 연결하면 인터넷 트래픽이 해커, 정부, 인터넷 제공 업체를 포함하여 그 누구고 들여다볼 수 없는 암호화된 터널을 통과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아래 그림이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더넷(Ethernet)+브이피엔(Virtual Private Network: VPN)이다. 브이피엔은 대충 알았으니 다음은 이더넷을 찾아본다. 아주 많이 듣던 용어다. 모르고 지나칠 때는 뜻에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찾아보니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미약한 영어 실력으로 대충 살펴본 바를 그냥 적어 둔다.
위키백과에는 '이더넷'은 지역 망(local area networks: LAN), 대도시 지역 망(metropolitan area networks: MAN)과 광역 망(wide area networks: WAN)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선으로 연결하는 컴퓨터 통신 기술 제품군'이라고 쓰여 있다. 랜선, 랜선을 연결하는 소켓 등에 쓰이는 기술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1980년에 상용화되었고 1983년에 전기 전자 엔지니어 협회에서 표준화(IEEE 802.3) 했다고 한다.
이더넷은 Ether+net인데 앞에 있는 낱말은 물리학과 화학에 나오는 에테르(Ether)에서 왔다. 물리학에서 아주 오래전에 빛이 파동이라고만 생각했던 시절에 쓰던 용어다. 빛이 파동이라면 당연히 빛을 전달하는 매질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주 공간은 텅 비어 있지 않고 '에테르'라는 물질로 차 있어 빛이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화학에서는 물과 유사한 결합 상태에 있는 어떤 물질을 이야기하는데 무엇을 말뿌리인가 아직 찾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을 하나 덧붙여 적는다. 짧은 글이지만 영어 약자로 된 말이 많이 나온다. 이들 하나 하나를 영어로 뜻을 새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쉬운 우리말로 옮기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들 용어를 쓰는 공부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이 있다.
영어를 공용화하던가 해서 더 널리 쓰이게 하는 길이 하나고, 전문가들이 영어로 쓰인 말을 최대한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을 하는 길이 다른 하나다. 검색을 하면서 교육청에서 만든 이브이피엔을 풀어서 설명하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 대부분 자료가 그냥 EVPN으로 적을 뿐 그 뜻을 우리말로 새기지 않고 있다. 나름대로 대학을 나왔으니 상당히 많이 배운 사람인 나도 모르는 말을 배움이 짧은 사람은 알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요즘 매스컴을 보면 아예 로마자를 그대로 쓰고 있다. 국어기본법 14조는 "공공기관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공문서에서도 로마자가 괄호를 벗어나 한글을 써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학생들 생활기록부에도 로마자를 그대로 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겨우 국한문 혼용을 벗어났더니 국영문 혼용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우리말을 홀대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며칠 전부터 로마자로 쓰지 않고 한글로 적고 있다. 내 눈에도 한글로 쓰는 것이 오히려 어색해 보인다. 아무튼 당분간은 이렇게 써 보려고 한다.
공부는 남을 주기 위해 하는 일이다. 요즘 논어를 읽고 있다. 옛것을 배워 새롭게 하면 스승이 될 만하다는 논어 구절로 끝을 맺는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온양하여 새것을 만들어낼 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