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룹과 수학::::수학과 사는 이야기

슈룹과 수학

수학이야기 2022. 11. 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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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슈룹'이 인기몰이 중이다. 모든 회차를 챙겨 보지는 못했지만 아내와 함께 본 회차가 제법 많아서 줄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슈룹'이 우리말로 우산을 이르는 말이라는 깨알 상식도 얻었다. 거의 죽어 버린 우리말을 살려냈으니 꽤나 유익한 드라마다. 못 보신 분들은 시간 남을 때 챙겨보시라. 

드라마 포스터

드라마는 세자가 죽고 나자 새로운 세자를 정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연히 왕자만 참가할 수 있지만  '택현'이란 이름으로 공개경쟁 시험을 거친다는 다소 황당한 전개가 펼쳐진다. 권모술수가 오가기도 하지만 마침내 세자가 정해졌다. 자세한 경쟁 과정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수학 시험은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경쟁시험이라면 수학 점수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조선 시대엔 수학은 그다지 중요한 학문이 아니었다. 하긴 백성을 잘 다스리는 성군이 되는데 수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지난 17일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졌다. 늘 그랬듯이 올해도 수학의 등급과 표준점수가 대학입시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선택형 교육과정이 시작된 이후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은 더욱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드라마 속 중전도 오늘날이라면 왕자들을 수학 단과학원에 보냈을까 궁금하다.

수학 교사로 고등학교에서 있다가 중학교로 옮긴 다음 느낀 바를 적는다.

고등학생보다 중학생이 학원 수강을 훨씬 더 많이 한다.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보충수업도 하고 자율학습도 하느라 학원을 다닐 시간이 많지 않다. 인강도 듣는 학생도 많아서 오프라인 학원 수강을 하는 학생이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중학생은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는 학생이 많다. 맞벌이라 집에서 아이를 돌볼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주를 이루지만 집에 부모가 있어도 아이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서 학원에 맡기는 경우도 매우 많다. 심지어 날마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영어, 수학, 논술에 이어 과학까지 다니는 아이들은 주말도 없다. 아무래도 수학과 영어 과목을 수강하는 아이들이 많다.

고등학생 학부모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포기하고 학원을 보내지 않지만 중학생 학부모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인 경우에는 중학교 교과내용을 다 마쳤다고 생각하면 고등학교 교과내용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학원의 마케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과내용 다 마쳤다고 대학교 교과를 선행학습을 시키는 학원은 없다. 

중학생은 학원에서 지나치게 잡다한 수학 문제를 많이 풀고 있다.

다른 과목은 잘 모르겠고 수학만 놓고 보면 학원을 다녀서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제법 많다고 여겨진다. 사실 중학교 수학 교육과정은 학원까지 다니면서 예습과 복습을 해야 할 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특히 선행학습을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당연히 개인차가 있어서 학원을 다니며 복습을 해야만 하는 학생도 많이 있다. 하지만 학원을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굳이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굳이 다음 학년이나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을 공부한다며 학원을 다닌다.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들여다보면 이제는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문제들이 제법 많다. 사실 요즘 중학교 교과서 문제는 답이 정수인 경우가 많고 분수라도 아주 간단한 분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시대회를 나가거나 특목고를 갈 것도 아니라면 교과서 수준을 제대로 복습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시험은 교과서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요즘은 서술형 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아서 풀이과정을 정리하는 연습이 매우 중요하다. 수업 시간마다 채점 기준에 따른 답안지 작성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데 관심을 두고 듣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학원에서 벌써 서너 달 전에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라 쉽게 답을 구할 수 있는 아이들도 막상 수학적으로 알맞게 답안지를 적지 못한다. 연습장에 문제 풀듯이 지저분하게 적거나 이유를 달지 않고 입으로 외운 공식에 숫자만 넣어서 기계처럼 답만 구한다.

특히, 중학교 2학년 기하는 논리에 따라 설명하는 문제를 많이 내는데 여기서 점수를 다 잃어버린다. 아는 문제만 나와서 시시해 보이는 수업 시간이지만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도 채점하는 사람도 학교 선생님이지 학원 선생님이 아니다. 정확하고 빠른 계산은 계산기가 다 해준다. 수학은 계산기가 되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힘들고 귀찮아도 정해진 길을 따라 차근차근 걸어야 길러지는 무언가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말했다.
"기하학을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길이 없겠소?"
유클리드가 말했다.
"왕이시여. 길에는 왕께서 걷는 길인 왕도를 따로 만들어 놓았지만 기하학엔 왕도가 없습니다." 

중학교 학부모라면 이렇게 해 보시라. 먼저 댁에 있는 자녀가 지난 학기에 받은 수학 성취도를 확인하자.

A 90이상~100: 학원에 다닐 필요가 전혀 없다. 혼자서 풀어볼 문제집이나 한 권 사주면 끝이다. 어쩌면 문제집도 풀 필요가 없는 학생도 있다. 수학의 흥미를 일깨우는 책들이 참 많으니 함께 찾아보고 읽어 보면 아주 좋다.

B 80이상~90미만: 마찬가지 학원은 다닐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제집만 사주면 혼자서 풀 능력이 없다. 여기서 능력은 스스로 세운 계획을 실행할 능력을 말한다. 부모가 같이 계획하고 실행 결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때도 훈련소 조교처럼 감시하고 강요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C 70이상~80미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학교 수학은 문제집 한권 정도 꼼꼼히 풀어보면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 가운데 학창 시절 수학을 싫어하지 않았고 시간이 허락되는 사람이 있다면 날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진도에 맞춰서 문제집을 같이 풀어보면 참 좋은데 쉽지는 않다. 학원을 보내려면 복습을 책임지고 시켜주는 학원이 좋겠다. 

D 60이상~70미만: 참 애매하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실수가 많아서 점수가 낮을 수도 있고 누적된 학습 결손이 많아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전자라면 어려워도 혼자서 만회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누적된 학습 결손을 채워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실망하지 말자. 중학교 교육과정은 내용이 많지 않아서 한두 달만에도 1년 치가 넘는 양을 공부할 수 있다.

E 60미만 요즘 어지간하면 수행평가로 받을 수 있는 기본 점수가 있어서 이렇게 낮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아마 학교 수업을 전혀 듣지 않고 공책과 책도 없을 것이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거나 다른 적성을 찾아보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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