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왕자 '가우스'::::수학과 사는 이야기

수학의 왕자 '가우스'

수학이야기/수학자 2023. 1. 1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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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나이가 어릴 때 사진이다.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가우스는 너무 많은 일을 하였다. 정수론, 해석학, 미분기하학, 측지학, 자기학, 천문학, 광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너무 많아서 제목만 나열해도 한참 걸린다. 천재인데 노력까지 하는 사람이다. 

7살 때 1부터 100까지 자연수의 합을 놀라운 통찰로 간단하게 구해서 교장 선생님인 뷔트너(Büttner)와 그의 조수인 요한 마틴 바르텔(Johann Martin Bartels) 눈에 띄었다. 1788년 가우스는 뷔티너와 바르텔의 추천으로 김나지움에서 들어가 고급 독일어와 라틴어를 배웠다.

재능을 알아본 공작에게 장학금을 받아 1792년에 브런지윅 대학에 입학했다. 1795년 보데의 법칙, 이항정리, 산술-기하 평균, 2차 상호 법칙, 소수정리를 발견했다.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서 볼야이와 교류했다. 1792년이면 열 다섯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입학한 까닭인지 친구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1798년 졸업장 없이 괴팅겐을 떠났지만 이때까지 정 17 각형을 작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것은 그리스 수학 이후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이었다. 그의 유명한 저작인 산술분석(Disquisitiones Arithmeticae)에 실렸다.

정수론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시간이 날 때마다 숫자를 100개씩 끊어서 소수를 찾아내고 어떤 정수보다 작은 소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추측했다. 이것이 바로 소수 정리다. 천재는 보통 사람과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다. 가우스는 소수를 찾는 방법이 아니라 비율을 생각했다.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정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 -가우스 

가우스가 정 17 각형이 작도 가능함을 증명했지만 작도법까지 알아낸 것은 아니다. 위에 있는 작도법은 한참 지난 다음에 다른 수학자가 찾은 것이다. 답을 봐도 작도하기 어렵다. 소수정리도 대단한 발견인데 발표하지 않았다. 나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그는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발표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다.

1800년대 초반부터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관심을 가졌다. 서신을 주고 받던 슈마허에게 그런 기하학의 존재를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면 평판이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1831년 볼야이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한 아들의 작업을 보내자 가우스가 대답했다.

그것을 칭찬하는 것은 나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10년 후 로바체프스키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정보를 받았을 때 진정한 기하학적 특성을 칭찬하고 1846년 슈마허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54년 동안 같은 판결을 받았다.

이것은 가우스가 15살 때부터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을 뜻한다.

워낙 뛰어난 인물이라 우표는 물론 지폐에도 등장했다. 왼쪽은 위대한 발견을 시리즈로 발행한 니카라과 우표이다. 오른쪽 우표에 정 17 각형의 작도를 그려 놓았다. 

지폐에는 가우스 분포를 그래프로 그려 넣었다.

$$\Phi(z)= \frac{1}{\sqrt{2\pi} }e^{-\frac{1}{2}z^2} (-\infty<z<\inf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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