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수학이야기 2008. 4. 18. 14:43
반응형

‘창의사고력 수학’은 최근 사교육업계에서 개발해낸 최고의 히트상품일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창의사고력 문제집과 강의에 매달린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현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창의사고력 수학은 고등 수학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수학적 일반화’나 ‘연역 논리’와 별 상관이 없다. 특히 창의사고력 수학을 잘해야만 중ㆍ고등학교 교과 수학을 잘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창의사고력 수학 문제들을 보다 보면 한마디로 ‘잡다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이큐테스트 문제를 발전시킨 성격의 것이거나, ‘이산수학’(discrete mathematics) 분야들 가운데 표준적인 초ㆍ중 교과과정에 속하지 않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나중에 고등 수학을 배우면 좀더 일반적인 수학적 원리에 따라 풀 수 있는 문제를 괜히 ‘노가다’(!)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 많다.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창의사고력 수학이란 게 느닷없이 나타난 이유는 뭘까? 첫 번째 기원은 외고 입시다. 2000년대 초반 교육당국이 외고 입시에서 교과 수학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통제하자, 외고 선발고사에 교과수학에 해당되지 않는 잡다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 기원은 영재교육원이다. 교육청이나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들이 원생들을 뽑을 때 교과과정 이외의 다양한 사고력 측정 문제들을 출제했고, 이런 문제들 중 일부에 ‘창의사고력 수학’ 문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창의사고력 수학 시장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판단한 사교육업계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획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상당한 투자를 했다. 그런데 야단이 났다. 각계의 지적과 비판에 직면한 교육당국이, 외고 입시에서 창의사고력 수학을 빼도록 유도한 것이다. 실제로 서울ㆍ경기 지역 외고 입시에서 작년과 올해에 걸쳐 창의사고력 수학이 제외됐다. 외고 입시라는 ‘믿을 언덕’이 없어지자, 사교육업계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는 ‘영재교육원’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창의사고력 수학이 중ㆍ고등학교 교과 수학을 잘 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것처럼 홍보하기 시작했다. 마침 수학은 논술과 더불어 학부모들이 소신껏 판단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고, 따라서 이런 마케팅은 상당히 잘 먹혀들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창 시절에 수학을 어려워했고, 창의사고력 수학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만한 자신감과 통찰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업계에서는 ‘창의사고력 수학을 다져놔야 나중에 교과수학도 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수학적 두뇌를 타고난 학생은 교과수학도, 창의사고력 수학도 잘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체력이 뛰어나면 수영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영을 잘해야만 달리기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고한다. 엄밀히 말해 초등학교 수학에서 분수ㆍ소수를 포함한 사칙연산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이면 중학교 수학을 공부하는 기초로서 부족함이 없다. 창의사고력 수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학생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 시간에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뛰어놀거나, 다른 영역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낫다.

이범 곰TV·EBS 강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