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자기소개서를 쓰자
사는이야기 2019. 8. 30. 11:15해마다 어김없이 수시철이 돌아온다. 마지막 '+α'를 기대하며 올해도 수많은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에 매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 신입생 선발을 위해 자소서를 평가하기도 했고 담임으로 맡은 아이들 대학 입시를 위한 자소서를 검토하기도 했다. 자소서 쓰기에 강조하고 싶은 점을 정리해 둔다. 이 글은 그냥 '수학선생이 보기에 좋은 자소서'쯤으로 여기면 된다.
학생들 학교생활은 대부분 고만고만하다. 의학 논문 제1 저자인 학생은 거의 없다. 눈에 띄는 활동이 없으니 뭔가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바늘을 몽둥이로 표현했다고 여겨지는 글이 너무 많다. 작은 활동이라도 그냥 솔직하게 노력한 과정을 적으면 좋겠다. 나만 두드러진 활동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잘 찾아보면 두드러지게 보일 수 있는 활동을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1학년이라면 미리 나중에 쓸 활동을 만들어 두면 좋다.
판에 박힌 글은 읽고 싶지 않다. 선행학습도 하지 않아서 수학 성적이 낮았다. 하루에 두 시간씩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꾸준히 노력했다. 그래서 마침내 성적을 많이 끌어올렸다. 조별 과제를 하는데 제 할 일을 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좋은 말로 잘 설득했다. 그래서 우리 조가 좋은 결과를 냈다. 본보기로 책에 실린 자소서를 그대로 흉내 낸 글에는 어떤 참신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자소서는 그 사람이 썼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열심히 노력했다.' 도대체 얼마나 어떤 노력했나 알 수 없다. '책을 많이 읽었다.'가 아니라 '한 달에 두 권씩 반드시 읽었다.'로 적어보자. 아주 감명 깊었던 책 제목과 느낌까지 적으면 더욱 좋겠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해낸 일이 있다면 그 일이 왜 힘든가를 눈으로 보듯이 느낄 수 있게 적고 어떻게 끝까지 했나를 적어야 한다.
그냥 경험한 바를 나열한 글에서 별다른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1번 문항만 보더라도 배우고 느낀 바를 중심으로 기술하라고 되어 있다. 학업에 기울인 노력은 많이 쓰여 있지만 뭘 배우고 느꼈는가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뿌듯했다.'가 느낀 바의 전부다.
마지막으로 글빨이 필요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무조건 문장은 짧아야 한다. 너저분한 수식어로 가득 차 있는 글은 그냥 화장빨이다. 나는 꿈이 없었다로 시작한 아주 담담한 일기 같은 자소서를 읽은 적이 있다. 어떤 꾸밈도 없었지만 어려운 환경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주어와 술어가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문장에서는 무능함만 드러난다.
자소서는 남들보다 이런 점이 뛰어나므로 나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당연히 자신감이 드러나 있어야 한다. 겸손함은 미덕이 아니다. 지금 당장 입시를 치르지 않는 학생이라도 가을엔 자기소개서를 쓰자. 아래는 내 중학교 시절 이야기이다.
운명은 중학교 1학년 수학 시간에 결정되었다. 갑자기 질문이 던져졌다. '기약분수가 뭐지?' 교실엔 잠시 적막이 흘렀다. '더 이상 약분할 수 없는 분수입니다.' 대답한 이는 나 하나였다. 그때 나는 사전 찾기가 취미였다. 뜻하지 않게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 수학선생님 눈에 들었으니 다른 과목보다 수학을 더 많이 공부했다. 수학 경시대회 학교 대표로 뽑혀 겨울 방학 내내 학교에 나와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수학 문제를 풀었다. 우리나라 경시대회 기출문제는 물론 일본 문제도 풀었다. 미국, 러시아 문제도 있었다. 유클리드 '원론'에 나오는 수많은 정리를 증명하고 작도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힘들었을 터인데 재미있었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아쉽게도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나는 지금 과학고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도 가끔 정오각형을 작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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