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사는이야기 2019. 10. 8. 13:09이 글은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된 오마이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다. '이야기 만들기'란 대문을 걸고 나름 오랜 시간 꽤 많은 글을 올렸기에 아쉬움이 많다. 아주 오랜만에 백업해 둔 글들을 읽다가 찾은 글이다. 2008년 8월 6일에 썼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란 책을 드디어 읽었다. 읽고 싶다는 생각에 샀는데 두께에 질려 집어 들질 못하고 한 달은 지났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을 보아야 마음이 후련해지는 나는 두꺼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두꺼운 책들 가운데 같은 말을 되풀이만 할 뿐 별로 볼 것이 없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처음엔 조금 지루하였지만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내 생각을 너무나도 뚜렷하게 정리해주는 여러 철학자들이 남긴 말들이 마음에 들었고 창조론의 허무 맹랑함을 진화론의 눈으로 또렷하게 드러내는 글들이 좋았다.
어린 시절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로 시작한 족보를 읽은 끝에 동정녀 마리아가 신의 아들을 임신했다는 성경을 읽었을 때 당혹스러웠다. 아니 예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왜 이렇게 많이 적어 놓았지. 마리아의 어머니나 아버지는 도대체 누굴까? 왜 이렇게 복잡하게 세상에 내려올까. 그냥 짠하고 나타나면 되지. 이 책에도 그런 것을 꼬집어 말한다.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전쟁들은 또 뭐란 말인가?
낙태나 안락사를 말하는 구절을 읽으면서 무신론자라 말하며 종교 특히 기독교를 비웃으며 살아왔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논리에 젖어있었다는 반성을 했다.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낙태는 좀. 강간으로 생긴 아이도 생명인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아이 엄마의 삶보단 아직은 뱃속의 아이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나 할까? 그래도 낙태에 대해선 도킨스의 생각을 모두 내 생각으로 하기엔 조금 꺼려지긴 하지만 안락사에 대한 도킨스의 생각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백인들이 지나간 섬들에서 화물 숭배가 나타나기도 했단다.
'19세기에 시작된 숭배 의식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출현한 더 유명한 의식(바누아투 탄나섬의 'John Frum' 숭배를 지칭)에 이르기까지 모든 화물 숭배 의식들은 똑같은 패턴을 보인다. 모든 사례에서 섬 주민들은 관리, 병사, 선교사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섬으로 이주한 백인들의 불가사의한 물건들을 보고 깜짝 놀란 듯하다. 섬 주민들은 경이로운 물건들을 쓰는 백인들이 결코 그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리가 필요하면 백인들은 물건을 멀리 보냈고, 배나 나중에는 비행기의 '화물'로 새 물건들이 계속 도착했다. 백인들은 물건을 만들거나 수선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고, 유용성이 있어 보이는 행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 따라서 화물은 초자연적인 기원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그 점을 확인해주려는 듯, 백인들은 종교의식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특정한 행동들을 했다.(p.309)'
'그들(백인들)은 높다란 기둥을 세우고 전선을 매달았다. 그들은 불빛을 반짝이며 신기한 잡음과 억눌린 목소리를 흘려보내는 작은 상자들 앞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동네 주민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고 위아래로 행진하라고 시켰다. 그보다 더 쓸모없는 짓은 떠올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원주민들은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백인들이 신에게 화물을 보내달라고 올리는 의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원주민도 화물을 원한다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분명했다.(p.309)'
바누아투의 탄나섬에서는 아직까지도 'John Frum'이라는 구세주가 풍족한 화물을 가지고 재림할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매년 2월 15일 종교의식을 거행한다고 한다.
섬사람들은 전지전능한 백인들에게 화물을 가져다주는 비행기를 신의 전령이라 믿었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들에게도 비행기에 엄청난 물자를 실어 보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행기가 섬으로 착륙할 수 있도록 활주로 비슷한 것을 만들기 시작했고, 활주로 좌우에는 유도등처럼 불을 피워놓았다. 또, 사람이 들어와 앉을 수 있도록 관제탑같은 통나무 집도 만들었고, 대나무를 깎아 안테나처럼 달아 놓았다. 그 안에서 나뭇가지를 헤드셋처럼 묶고 앉아, 비행기가 착륙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들은 이전에 다른 곳에서 본 진짜 활주로의 모습을 재현했다. 적어도 그 형태만큼은 완벽했다.
태극기 집회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는데 아직도 열리는 모양이다.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기대 오히려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뉴스를 보다가 태극기 집회를 진행하던 전광훈 목사가 뜬금없이 '지금은 헌금할 시간'을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사이비 교주처럼 보였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 정신상태가 궁금하다. 태극기 집회로 구글링을 해 본다.
사진마다 태극기와 함께 나부끼는 성조기가 보인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저들은 왜 성조기를 섬기는가 궁금하다. 일제강점기 영원할 것으로 믿었던 일제를 원자폭탄 단 두 방으로 끝장낸 아메리카를 보며 전지전능함을 떠올렸을 법하다. 달콤한 초콜릿을 던져주던 미군과 고아를 돌보던 선교사에 대한 추억이 지나쳐 믿음으로 굳어지지 않았나 싶다. 안타까운 일이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에 빠지기 쉽다. 하루빨리 사탄의 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엄연한 독립 국가인 대한민국 한 복판에 성조기 휘날리며 머리를 조아리는 인간들을 보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미몽에서 깨어나기 정녕 어렵다면 제발 태극기만 흔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