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러 대학 간다?::::수학과 사는 이야기

공부하러 대학 간다?

사는이야기 2019. 11. 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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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고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1996년 3월부터 교단에 서기 시작해서 고등학교에서만 일했다. 그동안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 제도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또다시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려고 한다. 수학 교사로서 혼자 생각을 정리해 본다.

대학 입시는 교육 문제인가?

바둑에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다. 정부가 오랜 시간 머뭇거리다 내놓은 정시 확대 정책은 악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는 왜 이런 악수를 두게 되었을까? 가장 큰 까닭은 교육 문제를 교육보다는 사회나 정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대학 입시를 교육 문제로만 보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는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 입시 제도를 교육 문제로 해결하려고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대학은 무조건 나와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것도 이름 난 대학을 나와야 한다. 당연히 치열한 경쟁이 생기고 승자를 결정하는 입시 제도를 두고 저마다 이익을 지키기 위한 싸움도 뜨겁기 때문에 입시 제도를 교육 문제로만 보기 어렵게 된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아니더라도 수시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문제 제기는 오래된 일이다.

요즘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이 많이 합격한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통계는 잘못이 없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과학고만을 따져 보기로 하자. 내신 성적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려운 과학고 학생이 교과전형을 통과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과학 인재 전형'과 같은 학생부 종합 전형에 많이 지원한다. 일반고 학생은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지원한다. 우리 학교 학생 대부분은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합격한다. 수시모집 전체에서 학생부 종합은 24%, 학생부 교과 전형은 41%을 차지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은 종합 전형 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로 학생부 종합 전형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수능시험이 얼핏 보면 과정은 공정해 보이지만 부모의 경제력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수시 교과 전형이 가정 형편에 따른 영향을 가장 덜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딱 갈라 말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진보 쪽은 학생부 교과를 보수 쪽은 학생부 종합을 좋게 본다. 하지만 교과 전형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 실시했어야 하는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와 고교 학점제가 시행되면 지금처럼 상대평가 9등급으로 나뉜 성적은 사라져 학생들이 가진 능력을 내신성적으로만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억지로 교과 전형을 유지하면 오히려 강남 8 학군이 교과 전형에서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교육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대학 입시 제도는 결국 수시는 학생부 종합, 정시는 수능 전형이어야만 한다.

공부하러 대학에 가는가?

먼저 대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영어 University는 라틴어 universitas에서 왔다. 배우고 익히고 연구하는 공동체라 보면 된다. 대학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나 공자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공동체를 기원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 진리를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이가 모여서 같이 공부하는 곳이 대학이다. 가장 먼저 생긴 유럽 대학으로 꼽히는 볼로냐 대학도 마찬가지다. 세금이나 병역을 면제받기는 했지만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배고픔을 무릅써야만 하는 일이었다.

볼로냐 대학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오늘날 대학을 중세 대학과 같은 곳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학이 누구나 다녀야 하는 보편 교육을 하는 곳은 아니다. 직업을 가지기 위한 기술만을 가르치는 직업학교도 당연히 아니다. 참고로 여기서 전문대학은 논외로 하겠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모든 학생이 바라는 학교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면 가장 좋다. 물론 당연히 등록금은 없애거나 아주 낮추어야 한다. 대학 평준화와 추첨제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이런 제도는 이루기 힘든 꿈이기도 하지만 꿈을 이루어도 문제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마음만 가지고 할 수 있는 학문은 없다. 모든 젊은이가 학문에만 매달리고 일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멈추고 말 것이다.

수학 능력 시험은 절대 평가로

어떤 대입 제도가 옳은가는 따질 수 없다. 우리나라 입시 제도 변천사를 보면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상당히 좋은 제도이지만 자식을 위해선 양심 따위는 하찮다고 여기는 학부모가 다수인 우리나라에선 탱자보다 못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대학이 수준이 같아지고 등록금도 없어져 모두가 바라는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제도도 마찬가지다.

수시냐 정시냐 문제보다 대학을 공부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은 이름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할 최소한의 능력을 절대 평가하는 자격시험이 되어야 한다. 선발이 목적이 아니므로 변별을 위한 난이도 조절은 필요 없다. 이미 계획한 대로 고등학교에서 치르는 시험도 절대 평가가 되어야 하고 나아가 객관식 평가를 없애야 한다. 학생을 뽑을 권한을 대학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대학을 믿을 수 없는 이가 많겠지만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한다. 요즘 면접으로 출제되는 수학 문제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대학별 고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해야 한다.

보편 교육이란 이름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쉽고 간단하게만 만들고 전문 교육을 모두 대학으로 미루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학문에 적성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대학만 진학하면 실패하기 쉽다. 중학교에 있는 자유 학년제를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옮기는 것도 좋겠다. 6-3-3학제를 바꾸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공정하게 주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노동자를 업신 여기는 법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대입 제도만 고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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