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잘했던 까닭을 찾다::::수학과 사는 이야기

수학을 잘했던 까닭을 찾다

사는이야기 2019. 12. 2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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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책을 읽었다. 아내가 산 책이다. 제목은 '삶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이다. 제목이 처세술을 다룬 책이지 않을까 여겨지고 게다가 경제학이라니! 경제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한 일도 없으면서 수학으로 맨얼굴을 감춘 학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 최고를 외치는 경제학자 주장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한가한 때를 보내기 위해 펼쳐 보았다. 생각보다 아주 재밌다. 무엇보다 글쓴이가 인간을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까지 생각하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점이 좋았다. 적자생존, 무한경쟁을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경제학을 다루고 있지만 케인즈나 마르크스는 나오지 않는다. 

가벼운 글로 채워져 있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는 가볍지 않다. 글쓴이가 기자라서 그런가 신문 칼럼처럼 느껴진다. 짧은 글 모음이라 토막 시간에 읽기 좋다. 글이 끝날 때마다 넣어 놓은 '바쁜 나를 위한 한 줄 요약'도 이채롭다. 정말 바쁘다면 요약만 읽어도 대충 알 듯하다.

맛보기로 두 꼭지만 살펴보자. 첫사랑이 잊히지 않는 까닭과 벼락치기가 잘되는 까닭이다. 각각 '자이가르닉 효과'와 '터널 효과'다. 

대학원생이던 심리학자 자이가르닉은 식당에서 아주 복잡한 주문을 척척 외운 웨이터가 주방에 주문을 넘기고 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걸 관찰했다.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심리학 실험을 실행했다. 참가자를 A모둠과 B모둠으로 나누고 간단한 과제를 주고 A모둠은 그대로 두고 B모둠은 갑자기 티브이를 켜거나 하는 일로 끊임없이 방해를 했다. 끝나고 나서 과제를 기억한 비율은 32%와 68%로 B모둠이 36% p나 높았다고 한다. 

왜 첫사랑은 잊히지 않을까?

우리 뇌는 완벽하게 끝낸 일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나 끝내지 못한 일은 뇌리에 남아 오래 기억한다. 첫사랑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미완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29쪽

1913년 미국 담배 '카멜'은 2주 동안 백지 광고를 넣다가 다음엔 점 하나만 내보내고 점점 크게 만들어 낙타를 만들었다. 낙타가 완성되자 알파벳 'C, A, M, E, L'이 한 글자씩 나타나고 며칠 뒤 "낙타들이 온다."는 문구가 나왔다. 이렇게 상품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 광고를 '티저 광고'라고 한다. 바로 '자이가르닉 효과'를 노린 것이다. 

왜 시험 전날에 공부가 제일 잘될까?

결핍 상황에 놓이면 인간은 오로지 눈앞의 해결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이것이 벼락치기가 잘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결핍이 무조건 좋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38쪽

어떤 책은 결핍이 효율을 높이므로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아니다. 소방관 전체 사망자의 25%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79%)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고 한다. 긴급 상황에 집중한 나머지 출동하면서 문을 닫거나 안전벨트를 매는 일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멀레이너선과 샤퍼는 이런 현상을 '터널 효과'로 부른다. 터널에 들어서면 시야가 좁아져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앞만 보는 현상이다.

벼락치기로 공부한 내용은 시험이 끝나면 대부분 기억 속에서 지워진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책을 덮고 이제 잘난 척을 할 차례다.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수학을 아주 잘하는 학생이었다. 정확하게는 어려운 수학 시험 문제를 아주 잘 풀었다. 중학교 때부터 수학 문제를 풀 때 답지를 보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경시대회에 나갈 학교 대표로 뽑혔는데 수학 선생님께서 문제만 내주시고 답지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한참을 풀어도 정답에 이르는 길이 보이지 않다가 어느 한순간 매직 아이처럼 길이 훤히 보이는 경험은 나를 들뜨게 했다. 그 후로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아도 좀처럼 답지를 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오히려 결핍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벼락치기로 시험을 준비하지 않았다. 벼락치기를 해야 할 만큼 시간이 없을 때는 그냥 시원하게 포기하고 잠을 잤다. 좀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평소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였다. 당연히 풀리지 않는 문제와 씨름하는 일이 잦았고 끝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있었다. 요즘 변별을 위한 어려운 문제는 나를 고생시킨 문제일 때가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끝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시험에 나오지 않았다. 100점을 맞을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았다.

요즘 사교육을 받아도 수학이 어렵다는 아우성이 크다. 정석 문제를 푸는 중학생이 많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있단다. 수학은 누가 가르쳐서 잘하는 학문이 아니다. 수업 시간엔 이해했다고 느꼈던 문제가 그대로 시험에 나왔는데 못 풀 때가 있지 않은가? 수학 문제 풀이를 아무리 많이 구경한다고 자기도 문제를 잘 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모의 면접을 지도하면서 3년 내내 시험에서 받은 등급에 비해 터무니없이 실력이 부족한 학생을 많이 본다. 벼락치기로 공부한 학생이 아닐까 싶다. 

똥 누는 일은 아무도 대신 해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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