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능력시험과 코로나19

수학이야기/확률통계 2020. 11. 2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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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 입학 수학능력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비행기도 뜨지 못하게 하는 절대 위력을 가진 시험답게 코로나-19 대유행도 시험을 미룰 수는 있지만 막을 순 없다. 사실 수능이 미뤄진 것은 워낙 상황이 심각했던 탓이지만 교육부 장관이 상당한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원래 예정되었던 지난 11월 19일보다 12월 3일이 상황이 더 심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별 다른 문제 없이 잘 치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래 수능 시험은 이제까지 다른 해보다 결시율이 높을 것이다. 응시생 가운데 상당수는 시험을 볼 뚜렷한 이유가 없다.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요구하는 수시 전형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추억을 위해서 또는 수험생 할인 혜택 때문에 응시했다고 말하는 학생도 많다. 따라서 이런 학생들 가운데 수능이 끝나고 면접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은 응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볼 필요도 없는 수능 시험을 보러 갔다가 코로나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결시가 현명한 선택인 학생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 이런 학생들이 모두 현명한 선택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제를 살피기 전에 먼저 수능 성적표에 나오는 표준점수인 $T$점수를 알아보자. 수능 표준점수는 아래와 같이 산출한다. 어쩌다 보니 며칠 째 계속 통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1. 해당 영역 응시 학생 평균은 $\mu$이고 표준편차: $\sigma$라고 할 때, 원점수 $X$를 표준화한 $z$-점수를 아래와 같이 구한다.

$$Z=\frac{X-\mu}{\sigma}$$

2. 위에서 구한 $Z$로 변환 표준점수 $T$를 아래와 같이 산출한다.

국어/수학: $\displaystyle{T=100+20\times Z}$

                                          탐구/한국사/제2 외국어: $T=50+10\times Z$

** 국어와 수학 영역을 식 하나로 쓰면 아래와 같다.

$$T=100+ 20\times\frac{X-\mu}{\sigma}$$

표준 정규분포 곡선: 확률변수 $Z$는 표준 정규분포를 따른다.

왜 다시 표준점수로 바꿀까! 3년 동안 공부한 결과로 수학 $1.5$점 또는 $-2$으로 적힌 성적표를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통계를 모르는 부모님이 보시면 눈물을 흘리실 수도 있다. 아무튼 표준점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몰라도 높을 수록 좋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대충 120 이상이면 잘하는 편이고 140 이상이면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면 얼추 들어맞는다.

확률 이론에 따르면 응시 학생이 많으면 정규분포 곡선을 따른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확률은 결과가 우연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를 생각하여 만든 이론이다. 수능 점수는 우연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위에 있는 그림처럼 대칭인 그래프를 가지지 않는다. 요즘처럼 수포자가 많은 경우는 0~20점 사이에 있는 학생이 80~100점에 있는 학생보다 훨씬 많다.

이 학생들이 모두 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보자. 해당 영역 응시 학생 평균이므로 결시한 학생은 산정에 넣지 않으므로 $\mu$가 확 오르게 된다. 이에 따라 표준편차도 작아지겠지만 높은 표준점수를 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또한 1 등급은 4% 이내처럼 계산하기 때문에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결시하면 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예전에 갑자기 아랍어 응시자가 확 늘어났던 때가 있다. 어차피 다 같이 모르니까 확률에 맡기는 편이 표준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사가 선택이던 시절 서울대가 한국사를 필수로 지정하자 대다수 학생들이 한국사를 택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경쟁하면 높은 표준점수를 받기가 어려우므로 나름 현명한 선택을 한 셈이다. 학생들 잘못이 아니라 상대평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뭔가 있어 보이는 수식을 동원한 계산법으로 산출되는 표준점수가 뭔가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많다. 상대평가는 교육적이지 못하다. 상대평가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올림픽이라면 몰라도 인성을 기르는 교육에선 하루빨리 없애애 한다. 수능뿐만 아니라 내신성적도 아직까지 상대평가이다. 교육부에서 기껏 절대평가인 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준비를 마쳤지만 자꾸 전면 시행을 미루고만 있다. 오히려 전국 모든 학생이 같은 시험 문제로 평가하는 수능시험보다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차이가 나는 학생들 수준을 무시한 채 상대평가를 하는데 따르는 내신성적이 더 불공정하다며 정시를 확대하자는 주장까지 힘을 얻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1등급을 받은 학생은 당연히 박수를 받아야 한다. 1등급을 받은 학생은 오롯이 혼자 힘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낮은 점수를 깔아준 학생 때문에 받았을 가능성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1등급이 다른 사람을 깔볼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혹시나 교육부나 교육과정 평가원 관계자가 읽는다면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지역에서 수능 감독을 할 수 있도록 조처해 주기를 바란다.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있는 시험실을 감독하게 되면 어떤 부정한 일을 저지를 부도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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