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그렸던 그림

사는이야기 2021. 1. 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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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그림이다.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 그렸던 그림이니까 10년은 넘었다. 그 시절 주된 관심인 레미콘,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 소방차, 자동차 캐리어를 그렸다. 크레인 차도 무척 좋아했는데 사진을 찾지 못했다.

특이하게도 녹색으로 그린 두 번째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를 무척 좋아했다. 뒷부분에 통을 연결하면 스스르 올라가 통을 비우는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인 레고가 주로 소방차나 건설기계인 까닭이기도 했을 것이다. 언제까지 어린이로 볼 것인가? 법에 따른 기준은 따로 있지만, 소방관이나 청소부를 꿈꾸던 아이가 의사나 정치인을 꿈꾸는 때가 되면 어린이를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사람이 있다. 의사나 정치인은 특히 공무원은 레고에 등장하지도 않으므로 어린이집 아이가 공무원을 꿈꾸고 있으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면 공무원이 꿈인 아이가 많아지고 건물주가 꿈이라는 아이까지 나타난다. 세상을 구하는 어벤져스는 없다고 느끼면 어린이가 아니다.

요즘은 연예인이 꿈인 아이들이 참 많다. 그 가운데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돈을 쉽게 벌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해서 그런 경우도 많다. 레미콘 기사나 청소부, 소방관이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라면 이 직업을 꿈꾸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올해 대입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자소가가 쓰였다. 온갖 미사여구로 꿈을 포장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잘라 말하면 '뭔가 폼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대학을 진학하고 싶다.'가 전부인 자소서도 아주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노벨상에 도전하는 배고픈 과학자나 시인 소설가보다는 의사나 변리사, 변호사, 판검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시청이나 동사무소 공무원이라도 좋다. 하지만 이것은 내 욕심일 뿐이란 걸 잘 안다.

아들이 사는 세상은 달라졌으면 좋겠다. 달라져야만 한다. 누구나 열심히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반드시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일터에서 죽는 노동자가 하나도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아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에 마땅한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면 아쉽지만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게 일하고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가슴이 아프고 쓰려서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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