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 숫자

수학이야기 2023. 1. 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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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중학교 수학을 가르친다.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칠 때보다 더 자주 관련 자료를 찾는다.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개념을 가르쳐야 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검색하다 보면 고대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수학이 남긴 자료를 만날 때가 많다. 며칠 전 무리수를 소개하는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하다가 고대 바빌로니아 점토판 YBC7289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바빌로니아 숫자를 조금 더 자세하게 정리해 둔다. 맨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원문을 만날 수 있다.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었다. 옛날 사회 시간에 배웠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을 끼고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 속한다. 이전에 있던 수메르와 아카드를 이어 수학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10이 아니라 60을 밑으로 하는 진법을 사용하였다. 바빌로니아가 60진법을 썼다는 말을 들으면 숫자가 60개나 되면 어렵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숫자는 1과 10을 나타내는 2가지만 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진흙에 쐐기 모양의 글자를 새겨 넣고 굽거나 말린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1800년 경부터 1500년 경 사이에 만들어진 유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숫자를 적을 때 자릿수 개념을 사용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훨씬 나중에 있었던 로마에서도 숫자를 적을 때 자릿수 개념은 없었다. 

자연수 표현

십진법은 10을 밑으로 하는 자릿수를 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2345는 아래와 같다.

$$12345=1\times 10^4 +2\times 10^3 +3\times 10^2 +4\times 10 +5$$

바빌로니아 점토판에 등장하는 숫자 1,57,46,40은 아래와 같다.

$$1\times 60^3 +57\times 60^2 +46 \times 60 +40=424000$$

각 자릿수를 구분하는 기호는 따로 없고 띄어쓰기로 구분했다. 쐐기 2개가 붙어 있으면 2를 나타내고 띄어쓰기가 되었다면 1,1을 뜻하므로 $1\times 60+1=61$을 뜻한다. 0을 나타내는 빈칸을 쓰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있었지만 10진법을 쓸 때보다 0이 써야 하는 빈도는 작을 것이다. 유럽에서 0을 수로 받아들이고 자릿수에 쓰기 시작한 시기를 생각하면 바빌로니아 숫자에 0이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아마도 띄우는 공간을 조금 다르게 하여 0을 구분했을 것으로 보인다.

점토판에는 거듭제곱을 계산한 기록도 있다. 2,27을 제곱하면 6,0,9임을 기록한 것이다.

$2,27=2\times 60+27=147$

$6,0,9=6\times 60^2 +0\times 60 +9=21609$

$147^2=21609$

소수 표현

소수 부분을 나타낼 때도 소숫점 아래를 60을 밑으로 표현하였다. 아래 사진은 YBC7289이다. $\sqrt {2}$의 근삿값을 기록하고 있어서 유명하다.

YBC 7289 - Wikipedia

대각선에 있는 1; 24,51,10이 나타내는 수를 10진법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참고: 점토판에선  ';'처럼 소숫점을 나타내는 기호를 쓰지 않았다. 그냥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1+\frac{24}{60}+\frac{51}{60^2}+\frac{10}{60^3}=1.41421\dot{2}9\dot{6}\tag{1}$$

https://suhak.tistory.com/1450

 

YBC7289와 무리수 $\sqrt{2}$

고대 바빌로니아인은 점토판에 정보를 새겼다. YBC7289 점토판은 기원전 1800년에서 1600년 사이에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어떤 학생이 남긴 것으로 여겨진다. 아래 사진과 같이 정사각형을 그리

suhak.tistory.com

모든 문명이 그렇듯이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물을 다스리기 위해 운하를 파고 관개수로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공학에는 늘 복잡한 계산이 따른다. 바빌로니아도 이를 위해 간단한 산술을 뛰어넘는 계산법이 발달했을 것이다.

왜 60진법이었나?

바빌로니아 수학에서 60진법을 쓴 까닭을 추측한 이론은 많지만 모두가 인정할 만한 것은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테온(Theon)은 60이 1 , 2 , 3 , 4 , 5의 최소공배수로 약수의 개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라면 12를 밑으로 쓰는 것이 더 나은데 어떤 주요 문명도 12를 밑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무게, 돈, 길이를 세분하는 많은 척도에 12가 들어있다. 영국의 단위를 보면 1피트가 12인치, 1실링이 12 페니이다.

노이게바우어(Neugebauer)는 수메르인들이 사용했던 도량형에 기초한 이론을 제안했다. 기본적으로 무게와 측정값을 3으로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0진법 계산을 60진법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1)에서 보이는 것처럼 많은 순환소수를 간단하게 적을 수 있다.(예, $1.\dot{3}=1;20$) 확실히 수메르인의 도량형 체계는 $\large\frac{1}{3}$과 $\large\frac{2}{3}$를 단위 분수로 쓰고 있다. 노이게바우어가 옳을 수도 있지만 도량형 체계가 숫자 체계의 결과가 아니라 그 반대라는 주장이 있다.

천문학에 근거한 이론이 있다. 60진법의 근거로 60이 행성의 수 5(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와 1년의 달 수 12의 곱이라는 제안이 있다. 수학 역사학자 모리츠 칸토어 (Moritz Cantor)가 1년이 360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60진법 이유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수메르인은 1년이 360 년보다 길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생각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또 다른 가설은 수메르인은 태양이 하루 동안 지름의 720배를 이동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었으므로 60을 밑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일부 이론은 기하학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의 예는 수메르인은 정삼각형을 기본적인 기하학적 구성 요소로 보았는데 정삼각형의 한 내각의 크기는 60 °이므로 이것을 10으로 나누면 각 6 °가 기본 단위가 된다는 것이다. 원 안에 이러한 기본 단위가 60개 있으므로 60을 밑으로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10을 나눗셈의 기본 단위로 쓰고 있음을 가정하기 때문에  모순된다.

어떤 문명도 특정한 사람들이 밑으로 쓸 수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메르인이 그들이 쓸 진법을 정하려고 위원회를 세웠다고 상상할 수 없다. 손가락으로 수를 세는 문명에서는 10이 기준이 되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사용하는 문명에선 기준이 20이 되듯이 수메르 문명에서 수를 세는 방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두 손으로 60까지 셀 수 있다. 왼손에는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손가락 각각에 관절에 의해 나누어지는 세 부분이 있다. 우리는 오른손 다섯 손가락 중 하나로 왼손 손가락의 12개 부분 중 하나를 가리키면 60까지 셀 수 있다. 손가락으로 10을 넘어 60까지 세는 방법이다. 

'자축인묘진사오미'하면서 손가락으로 60 갑자를 세는 걸 생각해도 된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수메르 문명이 계산을 위해 12진법을 쓰는 이들과 5진법을 쓰는 이들의 결합으로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고대 사람들 사이에서 5진법은 10진법만큼 흔하진 않지만 아주 드문 일이 아니다. 한 손 만으로 5를 세고 다시 세기 시작한 사람들이 사용했다. 

이 이론은 두 부류가 섞여서 서로 거래하며 두 가지 계산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모두가 이해하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고 가정한다. 수메르인은 0과 6을 밑으로 삼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 이루어졌다는 이론이 있다. 이런 이론은 바빌론 체계에 초기의 십진법의 잔재로 보이는 10을 위한 자연스러운 단위가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이 이론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두 가지 혼합 시스템에 대한 기록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어서 결국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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