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고현과 피타고라스 정리
사는이야기 2019. 9. 27. 11:59수학(Mathmatics)과 산술(Arithmatics)이 있다. 처음에 산술이 앞선 동양이 서양을 압도했다. 그리스 수학자 가운데 이집트나 아라비아로 유학한 이가 많았다. 실용과 기능 면에서 크게 앞섰던 동양이 서양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까닭은 무엇일까? 구고현과 피타고라스 정리가 있다. 두 정리는 모두 직각을 찾는 정리다. 동양 수학은 (3, 4, 5) (5, 12, 13) (8, 15, 17) (7, 24, 25) (20, 21, 29) (12, 35, 37) (9, 40, 41) (28, 45, 53)와 같이 숫자를 찾는데 만족했지만, 그리스 수학은 일반적인 증명에 관심을 두었다. 어쩌면 모든 차이는 이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과학고에서 6년째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1996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세월 따라 교육과정은 많이 달라졌지만, 수업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었다. 과학고에선 수업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다. 까닭은 수학다운 수학을 가르친다는 느낌 때문이다. 아쉽게도 조만간 과학고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영재고, 자사고, 외고와 마찬가지로 사교육을 유발하는 범인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 글을 '과학고를 위한 변명'으로 읽어도 좋다.
'자유'와 '평등'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평등'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자유 없는 평등'만 있는 세상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임을 잘 알고 있다. '불평등한 자유'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유토피아'는 가능하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세상'을 꿈꾸는 나는 이상주의자다.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특목고와 자사고 학생이 더 많이 뽑히는 것은 대학이 부도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고교를 똑같이 만들고 교과성적만으로 선발하면 공평한 세상이 될까? 과학고에서 가장 기억나는 수업 장면이 있다. 정사면체와 정팔면체의 이면각을 구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는 숙제로 내주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들고 정답을 맞힌 학생이 있었다. 필산도 아닌 암산으로 말이다. 그 학생은 당연히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내신성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에게 정사면체 이면각만 외워서 푸는 계산 문제만 되풀이하게 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수학을 멀리하고 말았을 것이다.
수학 분야엔 노벨상이 없고 필즈상이 있다. 마흔이 넘은 이에겐 필즈상을 주지 않는다. 35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페르마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는 나이 때문에 상을 못 받았다. 조만간 나이 규정을 없앤다고 하는 소식이 있지만 여태까지는 그대로다. 대부분 수상자는 10대에 품었던 연구 과제를 해결하여 상을 받는다. 수학을 문제풀이로만 여기고 의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만 쓰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사람이 필즈상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체육고이나 예술고처럼 특수목적을 위한 고등학교는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과학이나 수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이를 위한 학교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 영재고나 자사고에 견주어 과학고는 의대로 진학을 바라는 학생이 매우 적다. 이공계 진학을 꿈꾸는 학생이 훨씬 많아서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다. 물론 모든 고등학교가 과학고처럼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면 좋을 것이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단원을 모두 없애고 모든 학교 교육과정을 똑같이 만들어도 '바람직한 평등'을 이룰 수 없다. 자유 없는 평등조차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나 '기회균등' 전형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평등을 실현하기엔 문제가 많다. 뽑는 인원이 매우 작은 것도 문제지만, 실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입학 기회만 제공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면 현재 과학고는 사배자를 20% 뽑고 있지만, 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한 많은 학생이 낮은 성적으로 패배감만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은 무늬만 평등이다.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나라가 해야 할 일이 많다. 학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는 학생이 없도록 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에 있는 학생은 대학에 입학해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기준을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사배자 전형도 실력을 갖춘 학생이 뽑힐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워야 한다. 사배자에 대한 기준도 문제다. 이재용 회장의 자식이 한부모 가정이라 사배자 전형에 지원했던 사례도 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 그냥 책상에 앉아서 특목고를 일반고로 바꾸고 학생부종합전형 없애는 방안만 내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