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학문을 갈고닦는 곳이다
사는이야기 2019. 9. 24. 13:09조국 장관 딸 문제로 ‘학생부 종합 전형’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학 입시는 거의 모든 사람이 관련된 문제라 그만큼 파장이 크다. 크게 진보와 보수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지만 같은 진영 안에서도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아주 크다. 전교조 조합원인 나는 정치와 사회 문제엔 진보이지만 교육 문제엔 보수에 가깝다. 그래서 이글에서는 진보 쪽 주장에 있는 빈틈을 짚어보려고 한다. 오해를 피하려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친일 수구 세력을 보수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우리나라 대학입시는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으로 나누어져 있다. 수시모집은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크게 ‘학생부 종합 전형’과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시모집은 수학능력시험만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전형이 대부분이다.
진보 쪽에서는 교육이 계급 이동을 위한 사다리가 되기를 바라고 보수 쪽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이 되기를 바란다. 수학능력시험이 사교육을 유발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정시’보다 ‘수시’를 선호한다. 그런데 ‘종합’이냐 ‘교과’냐를 두고 생각이 갈린다. 영재고, 특목고, 자사고 학생과 학부모는 ‘종합’을 일반고 학생과 학부모는 ‘교과’를 선호한다.
‘종합전형’은 이름 그대로 교과 성적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까지 평가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교과 성적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교과전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과전형’과 달리 학생부에 기록된 성적을 숫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학교에 따른 교육과정과 학생의 구성을 고려한다. ‘고교등급제’ 논란이 뒤따르는 까닭이다. ‘고교등급제’를 강하게 반대하지만 ‘교과전형’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정시확대’도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균이 같은 두 학생이 있다. 한 학생은 선행학습으로 1학년 때부터 비슷한 성적을 받았고 다른 학생은 1학년 성적은 낮았으나 꾸준한 노력으로 성적이 크게 향상되었다. 누구를 선발해야 하는가? 3년 내내 성적만 관리한 학생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능도 사교육을 유발하지만, 수시가 대세인 요즘은 내신 성적을 위한 사교육도 상당하다. 수학과목이 사교육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요즘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문제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나쁜 문제로 찍힌다. 교과서 연습문제와 비슷한 문제만 나오므로 학생들은 학원에서 받은 반복훈련으로 쉽게 점수를 올릴 수 있다.
대안은 무엇일까? 고교 교육과정을 대학 입시와 연결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 수업을 아무리 바꿔도 상대평가를 그대로 두고 상황을 바꿀 수 없다. 계획했던 절대평가 도입이 없던 일이 된 것은 대학에서 고교 성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절대평가를 한다고 하면 더 많은 학생이 A를 받을 수 있도록 ‘성적 부풀리기’를 하는 것은 교사가 부도덕해서가 아니다. 대학이 ‘고교등급제’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종합전형을 늘리는 일도 부도덕한 일이 아니다. 학생이 갖춘 수학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교육이 악인 것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사교육을 없애는 일은 전두환 시절이나 가능했던 일이다. 학문을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평가하기 위해선 객관식 시험을 없애고 바칼로레아처럼 논술로 평가해야 한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학에서 출제한 면접 문제가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 대학과 교육 당국이 조금 더 힘쓰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나아가 수학능력시험도 주관식으로 바꾸고 수학능력이 ‘있음’과 ‘없음’으로 나누는 자격고사로 바꿔야 한다.
여기에 더해 대학 서열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수시모집에서 지원 가능한 대학 수를 하나나 둘로 줄여야 한다. 수시모집에서 여섯 개나 지원하는 제도는 재수생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대학 서열화만 굳어지게 만들었다. 충원합격으로 합격자가 옮겨가는 데이터만 보면 어떤 대학 어떤 학과가 앞선 서열인가 쉽게 알 수 있다. 수시모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진짜 가고 싶은 대학을 가려고 재수생이 늘어나는 부작용은 있겠지만, 능력 있는 학생이 대학별로 골고루 퍼지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입시제도만 바꾼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능력보다 대학 서열에 따라 사원을 선발하는 구조를 없애고 나아가 대학 졸업자와 고교 졸업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 육체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을 없애야 한다. 노동조합만 탓하지 말고 자본가에게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을 강제해야 한다. 실패한 사람도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꿈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초중고등학교는 대학 입시를 위해 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렇지만 교과 공부를 다 같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다.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 피해야 할 일은 아니다. 대학은 계급이나 계층을 정하는 곳이 아니다. 수학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학문을 갈고닦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