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아래 서기를 두려워 하지 말자
사는이야기 2019. 9. 30. 15:27서초동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검찰 개혁’을 외쳤다. 강남에도 광장이 열린 셈이다. 어쩌면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대상이 검찰인데 조금 늦은 느낌이다. 정치가 워낙 변변치 못하니 사람들이 몸소 나섰다. 언제까지 먹고살기 바쁜 백성이 직접 나서야 할까 궁금하다. 집회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읽다가 조금 마음이 불편해진다. 단체에서 동원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깃발이 없었음을 내세우고 있어서다. 오해라면 좋겠는데 참가자들은 마치 깃발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껏해야 중도에 가까운 보수가 진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불편하다.
공지영 작가가 진중권 교수를 비아냥거리는 글을 보았다. 조국 장관 임명을 동의한 정의당 지도부를 탓하자 머리가 안 좋아서 박사 학위도 못 받았다고 적었다. 유시민 작가는 검찰 수사를 쿠데타로 불렀다. 검찰이 벌이는 행태가 잘못이나 쿠데타 운운은 지나치다. 윤석열 검사를 총장으로 임명한 사람은 박근혜가 아니다. 주변의 걱정을 무시하고 특수통 검사들로 윤석열 사단을 만들어 준 때도 조국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다. 처음에 수사로 잘못이 없음이 밝혀지면 좋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은 사람도 있다. 이제 뜻대로 따르지 않자 검찰 전체가 썩었다는 듯이 몰아세운다. 옳지 않다. 간첩을 날조하는 공안 검사나 출세에 눈먼 정치 검사 몇몇이 문제였다. 어떤 조직을 개혁하기 위해선 외부의 힘이 필요하지만 조직 안에 개혁 세력을 키워야 한다. 조직 전체를 싸잡아 범죄 집단을 만들면 안에 있는 개혁 세력은 저절로 말라죽는다.
대법원은 도로공사가 요금 수납원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도로공사가 어찌하고 있는가? 대법에서 판결까지 냈음에도 민주당과 정부는 노동자를 위해 어떤 조치도 내놓고 있지 않다.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전교조를 법 밖으로 쫓아냈다. 이른바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를 바로 잡을 생각이 전혀 없다. 아직은 깃발이 필요한 까닭이다. 깃발 없었다면 박근혜를 끌어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수많은 깃발이 박근혜 탄핵을 외칠 때 눈치만 보다가 대세가 기울자 올라타더니 깃발을 내리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입만 열면 종북 좌파 운운하는 자유한국당에 바라는 바는 전혀 없다. 좌파로 몰려 표 떨어질까 두려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설사 부인이 구속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1심 판결에서 유죄를 받기 전까지는 조국 장관이 물러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검찰 개혁’에 실패한다면 그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민주당은 정확하게 이념의 좌표를 정해야 한다. 어정쩡하게 진보를 자처하며 진짜 진보 세력을 구석으로 몰지 말고 진짜 보수임을 내세워 수구꼴통인 자유한국당을 박멸해야 한다.
모든 양심 세력에게 바란다, 깃발 아래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제발 더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노동자와 농민을 가르치려 들지 말자. 깃발을 찾다가 전국고양이노동조합 깃발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