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자전거가 다가왔다

사는이야기 2020. 10. 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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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썼던 오마이블로그를 훑어보고 있다. 재미가 쏠쏠하다. 블로깅은 저마다 가진 작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사진 속 아이들이  한 뼘씩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자전거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자전거를 탄다.
사는 이야기 2006/06/07 08:45


출퇴근을 자전거로 한다. 일주일이 지났다. 뻐근하던 다리도 이젠 덜하다. 사실 자전거를 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자전거를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커다란 짐받이가 달린 자전거를 타셨다. 그것을 타고 막걸리를 배달하셨다. 키가 작으신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리 큰 자전거를 타셨을까 생각한다. 가끔씩 아버지 자전거 짐받이에 타기도 했었다. 스윽 밀면서 능숙하게 오르는 아버지를 보며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좋았다. 자라서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는 시장통에서 막걸리를 나르시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조금씩 싫어졌다. 친구들과 같이 갈 때는 모른 척 지나기도 했었다. 아버지 가슴엔 뽑히지 않는 못이 되어 있을 것이다. 왜 그랬는지 후회가 많다. 한동안 탈 생각도 안 했다. 운동삼아 타볼까 생각하고 중고자전거 점에 들렀는데 생각보다 헐했다. 3만 원. 옆에 서 있는 새 것이 6만 5천 원이란다. 헌 것은 눈에 안찼다. 새 것을 장만하고 나니 시간만 나면 타고 싶어 진다.

어제는 원주천 둔치를 달렸다. 타고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타는 것이 보인다. 차를 타고 지날 때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인다. 자전거는 참 많은 것을 정직하게 내 몸에 전해준다. 출근길은 약간 내리막이 많고 퇴근길은 오르막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넘어지려고 할 때는 더 힘껏 페달을 밟아야 한다. 잘 나갈 때는 잠시 페달 밟는 것을 쉬는 것이 좋다. 너무 빠른 것은 좋지 않다. 아침 바람은 상쾌하다. 오늘도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출근을 했다. 기름을 아낀다고 공무원들은 일주일에 하루씩 차를 타지 말라고 한다. 아직도 촌스러운 절약운동을 한다. 다른 데서 낭비되는 것이 훨씬 많을 텐데. 눈에 보이기 위한 대책만 세운다. 

그랬다. 어느 날 문득 자전거가 다가왔다. 제대로 용서를 빌지도 못했는데 이제 아버님은 곁에 계시지 않는다. 지금 보니 참 허술한 자전거지만 열심히 탔다. 요즘 어지간한 일은 모두 장비빨이다. 이 녀석은 레버를 돌려서 기어를 바꾸는 방식인데 어느 정도 타고나니 툭하면 체인이 풀리기 일쑤였다. 2008년에 조금 업그레이드했다. 진짜 자전거를 취미로 하는 이들이 보기엔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참 좋은 녀석이었는데 도둑을 맞았다. 아쉬운 마음에 경찰에 신고도 했다. 아파트 감시 카메라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도둑이 찍혔지만 경찰은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기야 대한민국 경찰이 하찮은 좀도둑 잡는 일에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제대로 간수를 하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한다.

다음은 중고로 삼천리 자전거를 샀다. 중고지만 잃어버린 새 것보다 비싼 녀석이다. 원주에 있다가 영월로 가서 근무하던 3년 동안 이 녀석을 탔다. 상동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고개도 오르고, 영월 읍내에 있는 봉래산 정상을 오르기도 했으니 꽤 상류 생활을 즐긴 셈이다. 봉래산 활공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요즘 타고 있는 자전거다. 오른쪽은 내가 왼쪽은 아내가 탄다. 내가 타는 자전거는 이제 오래된 탓인지 삐그덕 소리가 많이 난다. 같이 타지 않을 때는 왼쪽에 있는 녀석을 주로 탄다. 가끔 펑크 났을 때 자전거 매장에 들를 때마다 비싼 자전거에 눈길이 간다. 사실 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욕심은 끝이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자전거 업그레이드는 미루고 허벅지와 장딴지 힘을 기르기로 했다. 그렇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지름신이 강림하여 뽐뿌질을 할 수도 있다.

그동안 아이들 자전거도 달라졌다. 다들 그렇듯이 세발 자전거와 보조 바퀴가 달린 자건거로 시작했다. "오빠! 달려"를 외치는 둘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들 자전거에서 보조 바퀴를 떼던 날이 떠오른다. 워낙 많이 타서인지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바로 달릴 수 있었다. 딸 아이도 한두 번 뒤를 잡아주니 혼자서 탈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과 화천 산소길도 같이 타고 그랬는데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같이 타지 못했다. 코로나 탓도 있지만 애들이 크면 아빠보다는 친구랑 노는 걸 더 좋아한다. 

여기까지 대충 정리한 내 소소한 자전거 역사다. 이반 일리치는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고 말했다. 자전거는 인간이 만든 물건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움직인다. 달리는 동안 어떤 공해도 만들지 않는다. 유지비도 적게 든다.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자동차를 사기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빠르다. 지구를 지키면서 속도를 즐기고 싶다면 모두 자전거를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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