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사는이야기/여행음식 2026. 6. 18. 15:45아내가 국어 교사라서인지 문학 작품과 관련된 명소를 보면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강릉 헌화로에는 「헌화가」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워낙 자주 다니다 보니 어느새 눈에 들어왔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가운데 하나라고 알려준다. 신라 향가는 모두 14수만 전해진다고 하니 꽤 귀한 작품이다.

헌화가
검푸른 바위의 언저리에
손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아 두고
나를 나무라지 아니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헌화가」는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노인이 절벽에 핀 꽃을 꺾어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을 전할 때는 꽃만한 것이 없다. 헌화로는 옥계면 금진해변에서 정동진까지 이어지는 도로인데, 정작 향가 「헌화가」와 어떤 인연으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지 못했으니, 언젠가 한 번 살펴봐야겠다.
지나다니며 표지판만 보다가 지난 주말에 잠시 짬을 내서 약천사를 들렀다. 그냥 약천사로 검색하면 제주에 있는 사찰이 주로 나온다. 동해 약천사는 절이 아니고 약천 남구만을 기리는 사당이다.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어 자세히 살펴 보지는 못하고 시조비만 찍어 왔다. 교과서에서 보았으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한 시조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여태 아니 일어났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너무 오래전에 배워서인지 단순히 부지런함을 강조하는 시조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해석도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약천 남구만(1629~1711)은 서인의 영수로 영의정까지 지냈다. 그러나 1689년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남인이 서인을 몰아낸 기사환국 때 망상으로 유배되었다. 이곳 망상에서 지은 시조라 여기에 시조비가 있는 것이다.
이 시조를 정치적 현실과 연결한 해석은 이렇다. 동쪽 창이 밝아 온다는 것은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고, 여기서 해는 임금인 숙종을 상징한다. 노고지리(종달새)는 임금 곁에서 아첨하는 간신배를 비유한다. 소는 백성이고, 소를 치는 아이는 백성을 돌보아야 할 목민관이다. 따라서 국록을 받으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관료나 정치인들을 꾸짖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석 사진을 찍고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가 문득 최근 친문계와 친명계로 나뉘어 갈등을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권 여당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아야 하는데, 정작 소 치는 아이는 늦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몇몇은 한술 더 떠 밭을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제삿밥에만 눈이 멀어 다투는 모습처럼 보인다.